최근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A중소기업의 홍모(41) 과장은 전형적인 '하우스푸어(집이 있지만 가난한 사람)'다. 무주택자 시절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독촉하는 집주인의 독촉을 참다 못해 서울 서대문구에 빌라 한 채를 마련한 것이 화근이 됐다. 월급이 200만여원에 불과해 스스로도 조금 부담이 됐지만 허리띠를 졸라매면 곧 갚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자 부담으로 생활이 곧 힘들어졌고 그는 카드론과 마이너스통장 등에 의존하게 됐다. 어느새 1억원 넘게 불어난 빚 때문에 뒤늦게 집을 내놔봤지만 찾는 이조차 없었다. 사금융에 손을 대는 상황에까지 내몰리자 그는 결국 개인회생절차를 밟기로 했다. 카드대금ㆍ은행대출금 등 가계 빚을 견디다 못해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도 서민의 부채 부담을 줄여주려 저리금융 등 각종 구제책을 내놓고 있지만 개인회생제도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 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5일 대법원에 따르면 1월 전국 법원에 들어온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8,868건으로 지난해 같은 달(6,111건)보다 45% 이상 증가했다. 연간 단위로 살펴봐도 2010년 4만6,000여건에 불과하던 신청 건수가 2012년에는 9만건을 돌파해 2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서울중앙지방법원에는 1월 한 달 동안에만 2,051건의 개인회생 신청이 들어왔다. 지난 한 해 동안 서울지법에 접수된 2만455건의 10%가 넘는 수치다.
개인회생제도는 월 소득 가운데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나머지 가용금액으로 3~5년간 성실히 채무를 갚으면 잔여 채무에 대해 면책 받을 수 있는 구제 제도다. 매월 변제해야 하기에 일정한 직업(소득)이 있는 사람이 주요 대상이다. 법원 파산부의 한 관계자는 "무절제한 소비 때문이라기보다는 한 순간의 판단 실수로 빚이 갑자기 늘어났거나 박봉으로 쪼들리는 삶을 다른 방법으로 극복해보려다 실패한 경우가 많다"며 "번듯한 직장이 있는 사람도 많기에 일각에서는 제도를 악용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지만 최대한 걸러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대형병원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신모(48)씨는 월 급여가 400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그의 빚은 무려 3억원. 17년 전 동료의 대출 보증을 선 것이 잘못돼 신용불량자가 됐고 신용불량에서 탈출하기 위해 여러 금융기관을 전전하며 대출을 끌어다 쓴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금은 건축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진 이모(45)씨도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일시적으로 직장을 잃으며 조금씩 돈을 빌려다 쓴 것이 현재 1억8,000만원의 빚으로 남아 시달리게 됐다.
법원은 이처럼 개인회생제도에 기대는 사람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신청자가 확보할 수 있는 기본생계비를 인상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개인회생자의 생활비가 부족할 경우 다시 지금과 같은 악순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급여에서 최저생계비의 150%(3인 가구 기준 약 189만원)를 생활비로 쓰도록 보장해주고 나머지만 빚을 갚는 데 쓰도록 하고 있다. 파산부의 한 관계자는 "빚 못 갚겠다며 개인회생을 신청한 사람들에게 생계비를 지금보다 더 주겠다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이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개인회생제도의 취지인 만큼 좀 더 빨리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사회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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