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러운 실내 장식과 테이블, 소박하지만 정성이 듬뿍 담긴 빵이 한결같이 손님을 맞이하는 태극당은 197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빵집으로 현재는 서울 중구 장충동을 비롯, 돈암동ㆍ불광동에서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마치 타임슬립을 한 듯한 기분이 드는 태극당 점포에는 옛 기억을 추억하며 방문하는 어르신은 물론 기본에 충실한 맛에 반한 젊은 층까지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곳이다.
15일 유족 등에 따르면 노환으로 별세한 창업주 신씨는 1946년 서울 중구 명동에 '내 자식들에게 먹일 수 있는 빵과 과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태극당' 간판을 처음 내걸었다. 해방 전 일본인 제과점에서 일했던 그는 가게 주인이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두고 간 장비와 근무 경험을 활용해 가게를 냈고 '셈베이'라고 불렸던 일본식 과자나 캔디류 제품을 팔았다. 제품의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당시 태극당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주크박스가 설치돼 있어 젊은 남녀들에게 '만남의 장소'로 불리며 인기를 모았다.
신씨는 제과점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우유나 계란 등 질 높은 원료를 직접 조달하기 위해 낙농업에도 힘을 쏟았다. 이 같은 행보는 화제를 모았고 1968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그의 농장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또한 점포도 계속해서 늘려나가면서 현재 장충동 태극당을 포함해 종로와 혜화동 등 서울 시내에 10여곳의 지점을 냈다. 신씨의 둘째 아들 승열(56)씨는 "당시 태극당은 남녀들이 선을 보는 장소로 손꼽히는 장소 중 하나였다"며 "대선후보였던 이회창씨도 이곳에서 선을 봤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회상했다.
사업이 커지면서 신씨는 1970년대 후반 서울 강남에 제빵공장을 세우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품질관리를 최우선으로 삼았던 그는 프랜차이즈로는 고객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판단에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직영체제를 고집했다.
후발주자들은 이 틈을 노렸다. 태극당이 확장을 접었던 1980년대 후반 수많은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공장에서 찍어낸 새로운 빵을 선보이며 치고 올라왔다.
이 과정에서 오래된 메뉴인 셈베이0와 '모나카 아이스크림' 생산을 끝까지 고집했던 태극당은 화려하고 자극적인 맛의 빵에 밀려 대중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결국 태극당 지점은 축소를 거듭, 단 세 곳만 남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태극당의 맛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기에 수십 년 전의 맛을 그대로 지키는 태극당의 존재는 이어질 수 있었다. 일주일에도 몇 번이고 지인들과 태극당을 찾는다는 이가형(75)씨는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매일 사라지는 요즘, 이곳만큼은 바뀌지 않았으면 한다"며 "손주 녀석에게도 변함없는 태극당 모나카 아이스크림의 맛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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