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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노동개혁에 국가 명운 달렸다

임금 상승분만큼 생산성 제고한 獨처럼

단기 이익에 급급 말고 정치권, 표 잃을 각오로

미래 세대 위해 결단할 때


정진영 경희대 대외협력부총장.국제학과 교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위기는 흔히 재정위기라 불리고 흥청망청 정부지출을 늘린 일부 위기국들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그리스를 제외하면 위기에 빠진 국가들의 재정적자나 부채규모가 다른 선진국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로 위기의 근본적인 이유는 국가채무 문제가 아니라 국제경쟁력이 크게 다른 국가들을 단일통화 경제권으로 묶은 데 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네덜란드· 핀란드의 북유럽은 유로 도입으로 국제경쟁력이 강화된 반면 그리스·이태리·스페인·포르투갈의 남부 유럽은 오히려 약화됐다. 이런 두 지역이 단일통화 체제에서 함께 살려면 북유럽 국가들이 덜 일하고 지출을 늘려 경쟁력을 떨어뜨리거나 남유럽 국가들이 구조조정을 하고 지출을 줄여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 필요했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난 일은 정반대였다. 북유럽은 노동시장 및 연금제도를 개혁해 경쟁력을 더욱 높였으며 남유럽은 유로도입으로 낮아진 금리와 손쉬운 대출을 이용해 부동산 투자와 재정지출 증대를 즐겼다. 개별 국가들이 각자 자국 통화를 사용하고 있었다면 북유럽 국가들의 통화는 평가절상됐을 것이고 남유럽 국가들의 통화는 평가절하됐을 것이다. 그러나 두 그룹의 국가들이 유로라는 단일통화를 사용하다 보니 북유럽의 입장에서는 평가절하됐으며 남유럽은 평가절상됐다. 이처럼 북·남유럽 국가들의 엇갈린 운명은 유로도입 이후 경쟁력 증대를 위한 내부개혁을 했느냐 안 했느냐에 따라 갈라졌다. 세계화로 경제적 통합이 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개혁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국가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내부개혁을 하지 못하는 나라는 뒤처지게 된다.

이러한 내부개혁의 성공 여부를 잘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단위노동비용 추세다. 생산성에 비해 임금이 높으면 이 비용이 상승하고 반대의 경우는 하락한다. 생산성 증가만큼 임금이 상승하면 이 비용에는 변화가 없다.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당연히 생산성도 올라가고 임금도 올라가 고소득 상태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독일과 그리스의 극명한 대조는 독일의 경우 1999년부터 2010년까지 단위노동비용이 1.4% 증가한 반면에 그리스의 경우 54.9%나 증가했던 사실에 기인한다.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은 당연히 독일과 같은 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우리 사회에서 독일의 성공사례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다. 지난 5월 한국경제연구원은 독일 개혁을 이끈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를 초청해 '독일 어젠다 2010의 경험과 한국에 주는 조언' 주제 강연회를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진정한 정치인이라면 권력을 잃을지라도 필요한 일을 관철하는 용기와 의지가 있어야 한다"면서 개혁을 위한 정치적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가의 지속적 발전은 이런 방식으로 가능해진다. 정치인과 정당들이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이익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 국가의 미래는 어둡다. 슈뢰더의 이러한 충고 때문인지 요즘 정부와 여당이 부쩍 노동시장 개혁에 비장한 각오를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내년 총선, 내 후년 대선을 앞두고 있지만 국민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면 표를 잃을 각오로 노동 개혁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적극 추진하기 위해 내각 전체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도 노동시장 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생존전략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모두가 지당한 말들이다. 이 말들이 실천에 옮겨진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을 수 있다. 새롭게 떠오른 노동시장 개혁에 국가의 명운이 달렸다는 인식의 공유가 필요하다.

정진영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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