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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해외 기업 인수를 통해 세금을 편법으로 줄이는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오히려 스스로 해외 기업에 팔리는 미 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인수합병(M&A)의 주체만 바꾸는 '꼼수'를 통해 미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법인세제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미국 내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현지시간) 정보제공 업체인 롬슨로이터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9월 이후 해외 기업들의 미국 기업 인수규모가 1,560억달러로 전년 동기의 1,060억달러보다 47%나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2년 전 같은 기간의 810억달러와 비교하면 2배 가까운 규모다. 또 올 들어 해외 기업의 미 기업 M&A 규모는 610억달러로 지난 2007년 이후 8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9월 오바마 행정부는 미 기업들이 35%에 이르는 자국 법인세율을 피해 세율이 낮은 다른 나라 기업을 인수한 뒤 본사를 이전해 세금을 편법 절세하는 이른바 '세금 바꿔치기(tax inversion)' 수법을 막는 규제안을 내놓았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법인세를 내지 않으려 미국을 떠나는 기업은 '기업 탈영병'으로 미 기업이라고 부르지도 말아야 한다"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문제는 피인수를 통해 미국을 떠나는 기업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제 조치가 없다는 점이다. 오바마 행정부와 뜻과는 정반대로 미 기업들만 해외로 팔려나가고 법인세수도 더 감소하는 역효과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FT는 "투자은행들이 제약ㆍ에너지 등 미 기업들에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의 해외 매수자를 찾아보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제재 조치 이후 법인세율이 낮은 캐나다와 아일랜드 기업들의 미 기업 M&A 규모가 각각 260억달러, 220억달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전의 최대 인수자는 독일ㆍ일본 기업이었다.
미국 기업들이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해외에 쌓아놓은 현금도 갈수록 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등 8개 정보기술(IT) 대기업의 해외 보유 현금만 690억달러에 이른다. 이 때문에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법인세율 인하 등 조세제도의 전반적인 손질 없이는 기업들의 엑소더스를 피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미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모임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은 "지난 10년간 해외의 미 기업 M&A 액수가 정반대의 경우보다 1,790억달러나 더 많았다"며 "미국의 법인세율이 주요 선진국 수준인 25%에 머물렀다면 오히려 미국의 해외 기업 M&A 규모가 5,900억달러 더 많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국경 간 M&A 증가가 미국의 높은 법인세율보다는 글로벌 사업을 확장하려는 기업과 미 시장에 진출하려는 해외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sed.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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