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먹여서 결혼했나" 심한 막말에…
■ 막말 판사… 뇌물 검사… 삐걱대는 법조삼륜에 사법신뢰 흔들법원 고무줄 양형·검찰 권력 편향 오명변호사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부추겨국민 10명중 8명꼴 "재판 불공정하다"선민의식·기득권 버리고 불신 씻어야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조양준기자 mryesandno@sed.co.kr
[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1부. 법·질서부터 바로잡아라 비뚤어진 사법정의
최근 아버지를 여읜 A씨는 법원이라는 말만 들으면 진절머리가 난다.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너무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A씨는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줬다며 빚 독촉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여러 건의 민사소송을 해야 했다. 소송 자체만 해도 감당하기가 힘들었던 A씨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의 태도다. 이 판사는 공판 과정에서 원고와 피고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자 "여기가 시장 바닥입니까. 그만하고 합의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계속하면 피고에게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요"라고 일갈했다. A씨는 판사의 시퍼런 서슬에 눌려 할 수 없이 합의로 소송을 마무리해야 했다.
A씨의 사례는 최근 우리나라 법원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재판 진행 과정에서 신성한 법정 운운하며 판사들이 내뱉는 거친 언사는 그들의 선민(選民)의식이 얼마나 강한지를 말해준다. 판사들의 막말은 양승태 대법원장도 통탄할 정도다. 일부 판사들은 피고인에게 "늙으면 죽어야 한다"거나 "마약 먹여서 결혼했냐"는 도저히 법관의 입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말까지 마구 해댄다.
막말뿐만이 아니다. 고무줄 양형과 소통 부재 등으로 지적되는 사법부의 양면성이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법원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권 하수인으로 비춰지는 검찰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전국 고교생 3명 중 1명꼴로 법조인을 '비리가 많은 집단'으로 생각할 정도다.
국민 대다수는 검찰의 수사ㆍ처분이나 법원의 재판이 공정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나오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사법 불신이 '법질서가 무너졌다'는 인식을 낳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법부를 이끌어가는 이른바 법조 삼륜(법원ㆍ검찰ㆍ변호사)이 제각각의 이유로 삐걱거리는 데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국민에겐 여전히 문턱 높은 법원=법원에 대한 불신은 사소한 부분에서 시작된다. B씨는 손해배상소송 1심에서 이겼다가 2심에서 변호인단을 바꿔 항소한 상대에게 졌다. 대법원에서 억울함을 풀어보려 했지만 '심리를 속행할 이유가 없다'는 통지를 받았다. B씨는 "변호사도 왜 기각이 됐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납득할만한 충분한 설명 없이 국민들을 돌려세우다 보니 법원에 대한 불신은 커지고 있다. 실제 법률소비자연맹의 국민 법의식 조사에서 '법원의 재판이 불공정하다'는 답변은 2011년 67.1%에서 2012년 77.2%로 늘어났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아무리 억울해도 '법대로 하자'고 말조차 꺼내기 어렵게 된 셈이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는 "판사들이 별다른 설명도 없이 직권으로 소송을 강제 조정으로 돌린다거나 하면 국민들로서는 납득할 수 없다"며 "법정이 국민을 위해 진정으로 위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작은 정의부터 확실히 구현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 하수인' 꼬리표 못 떼는 검찰=검찰에 대한 국민 불신은 법원보다 더 심각하다. 2010년부터 이어진 스폰서 검사와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뇌물 검사, 성 상납 검사 등 일련의 사건들이 쉼 없이 터져나오면서 검찰 불신은 거의 수습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특히 검찰이 정치권 등 특정 권력과 밀월 관계를 유지하면서 법질서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다. 법조계 원로인인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는 "검찰은 외부의 정치적 요구를 사법부에 전달하는 법적 통로"라고 꼬집었다.
그동안 정치검찰 논란의 중심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자리 잡고 있다. 막강한 검찰권의 상징이자 정치 편향의 대명사라는 오명을 동시에 갖고 있던 중수부는 다행히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폐지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중수부만 없앤다고 권력 편향 현상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검찰이 가진 막대한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는 "국민의 사법 참여 요구에 부응한 재판배심원 제도처럼 검찰시민위원회를 만들어 검찰권 행사의 정당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부추기는 변호사=우리나라에서는 진실이라도 법적 논리를 제대로 주장하고 입증하지 못한다면 소송에서 질 수밖에 없다. '공판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서다. 대형 로펌에서 잔뼈가 굵은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과 변호사 선임 비용이 없어 스스로 변론하는 게 전혀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법률소비자연맹 설문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존재한다'는 답변이 지난해 77.1%에서 올해 92.8%로 급증했다. 또 서울경제신문이 현대경제연구원과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학력이 낮고 육체 노동이나 자영업에 종사하면서 나이가 많은 남자'일수록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변호사 강제주의와 민사변호사 구제 제도를 제시한다. 나 홀로 소송을 허락하고 있는 민사소송도 변호사를 무조건 선임하도록 하는 대신 변호사 선임이 쉽지 않은 서민들을 위해 국가가 비용을 분담하자는 취지다.
노영희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모든 국민이 경제적 사정과 관계없이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를 국가의 도움으로 선임할 수 있도록 돕는 한편 국선변호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도 함께 추진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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