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2년이 경과함에 따라 국내에 사무소를 차린 영국계 로펌은 '외국법자문사법'에 근거해 국내법과 외국법이 혼재된 소송이나 자문을 일부 수임할 수 있게 됐다.
영국계 로펌이 우리나라에 사무소를 차릴 수 있는 시장개방 1단계를 지나 2단계에 돌입한 것이다. 단 수임을 하려면 반드시 국내 로펌과 '공동 수임'을 해야 한다. 또 공동 수임을 원하는 외국 또는 국내 로펌은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해야 한다.
그러나 2단계 개방이 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공동 수임을 하겠다고 나선 영국계 로펌은 1곳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5일 변협에 따르면 현재까지 공동 수임(공동사건처리) 등록을 마친 곳은 전체 영국계 로펌 4곳 중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스'의 1건뿐이다. 공동 수임 등록은 한 번만 하면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건별로 건건이 해야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당초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숫자다.
법률시장 업계에서는 2단계 개방이 되면 외국 로펌들이 적극적으로 국내 사건 수임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공동 수임 등록 시 로펌 측이 밝혀야 할 정보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공동 수임 시 계약의 사안별 요지와 사안별 수임액, 수익분배 내역을 변협에 밝혀야 하는데 외국 로펌들은 "이는 고객 비밀을 밝히라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표면상의 명목일 뿐이라는 시각이 많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외국 로펌이 굳이 국내 로펌과 손을 잡고 사건을 수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국내에 사무소를 차린 외국 로펌들의 기본적인 목표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해외 진출이나 외국기업 인수합병(M&A) 같은 '아웃바운드' 건을 잡는 것"이라며 "이런 건들은 한국 지사가 아니라 본사에서 수임하면 그만이고 이는 불법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외국 로펌의 수임 방식이 법률시장이 개방되기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국내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굳이 등록절차를 거쳐 공동 수임을 하지 않아도 외국 로펌이 큰 건을 맡아 국내법과 관련된 부분은 국내 로펌에 '하청'을 주는 방식도 있고 외국과 국내 로펌이 각자 수임을 해 '조인트'를 하는 형식도 있다"며 "편법은 아니지만 '우회로'를 통한 사건 수임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법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자 일각에서는 탈법적인 수임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변협의 한 간부는 "외국법자문사법이나 규정과 현실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협회 주변에서도 계속 나오고 있다"며 "사건 수임 과정에서 국내법과 외국법의 구별은 잘되는 것인지, 탈법의 경우는 없는지 검토를 하고 있지만 정확한 사실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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