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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빈부격차는 100년래 최악"이라는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발언을 계기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가 소득 불평등 심화를 촉발했는지를 놓고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 통화완화 옹호론자들은 2008년 글로벌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돈 풀기' 정책이 불가피했다고 강조하는 반면 비판론자들은 주식·부동산 등 자산 거품으로 '상위 1%'의 부만 더 불려줬다고 반박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현지시간) "미국과 영국·일본 중앙은행이 자산매입을 시작한 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채권·주식 가격은 크게 반등한 반면 소득 불평등은 가속화하고 있다"며 "양적완화가 빈곤층을 희생양으로 삼아 부유층을 도운 게 아니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연준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0~2013년 미국 상위 10%의 가계 평균 세전소득은 10% 늘어난 반면 하위 40%는 오히려 감소했다. 특히 미 전체 소득 가운데 상위 3%가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27.7%에서 30.5%로 크게 늘었다.
옐런 의장도 17일 "미 경제가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주식시장은 반등했지만 임금상승과 노동시장 회복은 더디다"며 "소득 불평등이 100년 만의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고 우려했다. 연준 의장이 부의 불평등이라는 예민한 정치적 이슈를 거론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다만 옐런 의장은 연준의 통화정책 때문에 빈부격차가 심화됐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 공화당 등 비판론자들은 미국 내 소득 불평등은 연준의 천문학적인 돈 풀기 때문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2012년 미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밋 롬니의 경우 대선에서 승리하면 임기가 1년도 더 남은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을 교체하고 양적완화 조치도 종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영국 연금생활자를 위한 로비스트인 로스 앨트먼은 "저금리와 양적완화는 이자수익에 의존하는 노령층에 충격에 주고 있다"며 "이는 연금생활자의 세금은 올리고 부자나 은행·채무자에게는 엄청난 세제혜택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우려는 중앙은행 내부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2012년 영국 중앙은행도 "양적완화의 혜택이 총자산의 40%를 보유하고 있는 상위 5%에 주로 돌아갔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한 바 있다.
하지만 대다수 중앙은행 인사들은 "경기방어를 위한 필요악"이라며 억울한 기색이 역력하다. 양적완화 조치가 없었더라면 경제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저소득층이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연방준비은행 총재는 20일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진정한 소득 불평등은 소득이 아예 없는 것"이라며 "양적완화로 저소득층의 실업률이 떨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소득분배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저소득층 역시 저금리에 힘입어 싼값에 자동차를 사고 집을 빌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산가치 상승으로 부유층의 소득이 늘었지만 양적완화가 오히려 빈부격차를 개선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연준 인사들은 자산가격 상승이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은 총재는 최근 "최근 미 자산가격 상승은 2008년이나 2009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데 불과하다"고 말했다.
일부 경제학자들도 불평등 심화가 경기회복 과정의 불가피한 현상인 만큼 중앙은행이 과도하게 공격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리처드 바월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자산과 소득이 불균등하게 분배된 상황에서 경기가 개선되면 빈곤층보다 부유층의 부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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