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독일의 폭스바겐 자동차 공장에서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로봇 장치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로봇이 기술자를 철판에 밀어붙여 죽게 만든 것이었다. 몇몇 신문은 로봇에 의한 최초의 인간 살해라고 보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관련 당국은 기술자의 실수로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은 로봇에 의한 생활 편의를 기대하지만 한편으로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더 나아가서는 영화 터미네이터의 인공지능 '스카이넷'처럼 언젠가는 인류와 적대적 경쟁상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독일신문의 보도는 그런 우려들이 표면화된 현상이었다.
지난주 미국에서는 18세 대학생이 비행 중에 총을 쏘는 드론(플라잉 건)을 찍은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이제 청소년들까지 전쟁에 사용되는 드론을 손쉽게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무기화된 드론이 우리 앞마당에까지 올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나라는 총기소유가 불법이라 다른 나라에 비해 총기의 위험성에 대해 사람들이 둔감하다. 하지만 집에서 총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누구나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전자도면과 3D프린터 한 대만 있으면 직접 총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면.
총 쏘는 드론도 손쉽게 제작 가능
빛이 강하면 그늘이 짙다는 격언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필자가 3D프린팅 기술 강연 중에 자주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3D프린터로 권총을 만들어서 사용하면 어쩌죠"라는 질문이다. 3D프린팅 요소기술의 대부분은 이미 개발된데다 활용 분야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3D프린팅 기술의 발전에 대한 뉴스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더불어 3D프린팅 기술이 가져오는 불편한 이면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3D프린터로 모형 총을 만들 수 있다는 뉴스는 예전부터 있었고 이제는 금속 3D프린터를 이용해서 자동 소총을 만들어 팔겠다는 회사도 나왔다. 최근 미국에서는 3D프린터를 이용해서 어떤 열쇠든 복사할 수 있는 앱이 생겼다. 물론 차나 집 열쇠를 잃어버렸을 때 언제든 이 앱을 다운 받아 이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해킹으로 범죄에 악용할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3D프린터로 위조한 실리콘 지문을 이용해 인감증명서와 주민등록초본을 동사무소에서 발급 받은 뒤 50억원짜리 땅의 명의를 바꿔서 불법 대출을 받으려고 시도했던 사례도 있다.
3D프린팅 분야에서 저작권 분쟁은 이미 시작됐다. 영미권에서 제작되고 있는 디자인이나 영화·드라마의 주요 캐릭터를 본떠 3D프린터로 제작해 판매하다가 저작권 분쟁을 겪기도 한다. 3D프린터를 이용한 응용 분야가 확대되면서 윤리적 고민을 넘어서 법적인 분쟁도 점점 더 심각해지게 될 것이다.
과학기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기술은 다수가 용인 가능한 타당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면 냉장고·자동차·비행기 등과 같은 기술은 우리 생활의 질을 혁신적으로 높여줬다. 현미경이나 우주선과 같이 인간의 지적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과학기술도 있다.
핵무기나 인간 복제와 같이 윤리적으로 상당한 논란을 가져온 분야도 있다. 이런 논란은 과학자와 그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공동체가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논쟁의 중심에는 대개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기술자만 있다고 치부한다. 과학기술의 윤리는 과학자들에게만 달려 있다고 대부분 생각한다. 과학자들도 주로 그런 교육을 받아왔다.
윤리 공론화·사회적 합의 절실
드론이나 3D프린팅 등 첨단기술을 일반인도 쉽게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점차 만들어지고 있다. 실로 만인과학자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드론을 날리고 싶을 때 핵심 부품은 3D프린터로 찍어내고 조종은 자신의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 충분히 할 수 있다. 특정한 과학자나 기술자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반 소비자들이 첨단기술 발전과 응용, 현실 활용 등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일반인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기술 윤리에 대한 공론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첨단기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청소년들의 과학기술 윤리와 가치관 배양을 최우선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이런 문제를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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