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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CD에는 10여곡 안팎만 담을 수 있지만 mp3 파일로 변환하면 같은 용량에 수백곡을 담을 수 있다. '푸리에 변환'이라는 수학을 이용한 압축변환 기술 덕분에 가능해졌다. 200년 전 프랑스의 수학자 푸리에(Joseph Fourier)가 생각해낸 푸리에 변환을 이용하면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주파수대를 효율적으로 제거, 음원 파일의 크기를 대폭 줄일 수 있다. 또 통화할 때 잡음을 없애 상대방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듣거나 영상신호에서 노이즈를 없애 선명한 영상을 볼 수 있다. 수학 이론으로 푸리에 변환이 처음 나왔을 때는 이런 기술로 상용화돼 인류의 삶을 바꿔놓으리라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겠지만 현재는 사운드ㆍ영상 등 미디어 기술을 뒷받침하는 핵심 이론이 됐다.
기초ㆍ원천연구는 미래 성장 원동력
기초연구는 새로운 이론과 지식을 창출하는 연구, 혹은 미래에 광범위하게 응용될 가능성이 있는 지식과 기술에 대한 연구를 말한다. 연구를 하는 당시에는 푸리에 변환과 같이 어떻게 활용될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용적 목적으로 수행돼 효과가 금방 가시화되는 응용연구나 개발연구와 달리 기초연구 결과가 활용돼 경제적 가치 창출로 연결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기초연구를 통한 원천기술의 성과가 상용화될 경우 엄청난 파급효과를 창출하기 때문에 경제성장의 동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지식기반사회에서는 기초연구가 원천기술 개발과 고부가가치 산업 창출로 연결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미래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구는 투자 위험성이 높고 단기간에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다행히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중 기초연구와 원천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2008년 25.6%와 9.6%(합계 35.2%)에서 2012년 35.2%와 15.1%(합계 50.3%)로 증가했다. 기초ㆍ원천연구 투자비중 증가는 바람직하다. 그 중에서도 기술혁신의 원천인 창의적ㆍ도전적ㆍ혁신적 연구지원은 더욱 확대해야 한다. 미래 신생 분야와 같이 실패 위험이 높지만 성과를 낼 경우 파급효과가 큰 고위험ㆍ고수익 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잭팟을 터뜨리는 연구도 나오게 된다. 이런 모험연구를 위해서는 당초 목표에 비춰 성과는 미흡하더라도 성실히 연구를 수행했다면 별도의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는 '성실실패 용인제도'를 더욱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대선주자 비전 제시ㆍ건설적 토론을
더불어 일반경쟁을 통해서는 연구비 확보가 어려운 보호연구 분야에 대한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 올해의 경우 20개 보호연구 분야에 배정된 예산은 11억원에 불과하다. 전통과학기술이 그 중 하나다. 예를 들어 고대(古代) 의복재료를 통해 한국 고대 직물을 추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부가가치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할 가치가 있고 연구돼야 하는 분야다. 학문 연구에 있어 소외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이런 분야에 대한 배려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대선 시즌이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야 대진표가 확정됐고 온갖 불확실성 속에 정책 대결은 실종됐다. 대선 후보들이 역대 정권의 과학기술정책을 치밀하게 분석해 비판하고 향후 과학기술 비전을 제시하면서 건설적인 토론을 벌이는 성숙된 선거문화는 언제쯤 경험할 수 있을까. 대선 후보들이 기초ㆍ개발ㆍ응용연구에 어떤 비율로 투자할 것인지와 같은 구체적 사안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유권자들은 이를 관전하면서 의사결정을 하는 세련된 선거문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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