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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경쟁, 인간성 파괴하는 '악마'인가

■ 경쟁의 배신 (마거릿 헤퍼넌 지음, RHK 펴냄)

입시 앞둔 학생·운동선수 등 과잉 경쟁 탓 약물에 손대고

기업서도 조직 간 불신 초래

함께 힘 모아 일해야 효율적

수만 명의 선수 중 단 몇 명만이 성공과 보상을 누리는 엘리트 스포츠계의 잔인한 경쟁은 운동선수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곤 한다.
/=연합뉴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경쟁을 한다. 좋은 학교를 다니기 위해, 돈을 잘 버는 직장을 얻기 위해 그리고 명예와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경쟁을 한다. 하지만 경쟁이 너무나 각박해지면서 오히려 삶의 우선순위가 바뀐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든다. 행복한 삶을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위한 경쟁으로 밀려간다는 것이다. 경쟁은 근대 자본주의의 산물은 아니다. 인류가 시작하면서부터 경쟁이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발달에 따라 경쟁이 더 격화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경쟁체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 나갈 것인가는 우리 사회의 화두다. 아래의 두 책은 경쟁을 보는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시장경제와 인류의 발전을 위해 '최고선'이라는 쪽이 하나고, 제어하지 못할 경우에 인간성을 파괴하는 '악마'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하나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지만 경쟁을 바라보는 사고의 폭과 지평을 넓히는데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저작물이다.

경쟁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첫 번째 근거는 경쟁이 인간 본성에 비춰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점이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통해 설파했고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로 보충해줬듯, 인류 자체가 최고의 유전적 유산만이 살아남고 나머지는 죽어 사라지는 '진화'라는 경쟁의 소산물이다. 세상이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것은 당연하므로 경쟁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경쟁력을 키우는 게 낫다는 것이 승자의 조언이다.

'경쟁의 배신' 역시 경쟁이 본능에 가깝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저자는 경쟁 찬양론자들이 강조점을 두는 '경쟁이 최상의 성과를 낳는다'는 두 번째 근거에 대해 강하게 반박한다. 오히려 경쟁이 최고를 가려내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무자비한 경쟁이 얼마나 조직과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는지를 무수한 사례를 통해 낱낱이 밝혀낸다.

대표적인 것이 입시 전쟁이다. 학생들은 과잉 경쟁적인 분위기에 못 이겨 커닝 등의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약물 등에 빠져든다. 2013년 초 하버드대학교는 1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자퇴 권고를 냈는데, 이들이 모두 똑같은 답안지를 냈기 때문이었다. 꽤 많은 미국 대학생들이 더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마치 스포츠 선수들이 '스테로이드' 약물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처럼 주의력결핍장애용(ADHD) 처방 약물인 '애더럴'에 중독되기도 한다.

스포츠계와 학계도 마찬가지다. 엘리트 선수들에게 '약물 검사에서 발각되지 않고 금메달을 보장해주는 약물이 있는데 복용하면 5년 후 부작용으로 사망한다. 과연 이 약을 먹겠느냐'고 질문하자 무려 52%의 선수들이 이 약물을 먹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승부에 대한 지나친 압박이 개인의 삶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를 가리고 마는 것이다. 특정 물질이나 유전자를 단지 하루 빠르게 발견했다는 것이 인정과 보상에서 극복하기 힘든 차이를 가져오는 과학계에서도 가끔 터무니없는 경쟁이 벌어진다. "지금 류마티스성 관절염과 관련된 특정 유전자를 찾는 과학자 집단들이 미국과 스웨덴에 각각 있는데, 이들은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모든 집안과 세대를 찾아냈죠. 문제는 경쟁 때문에 연구 표본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양쪽 모두 통계학적으로 의미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의 표본을 갖추지 못했다는 겁니다." 한 과학자의 말은 경쟁이 가져다준 웃기고도 슬픈 현실을 잘 보여준다.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경쟁이 당연시되던 기업 조직에서조차 경쟁이 가져오는 폐해는 심각하다.

저자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십년 동안 진정 혁신적이라 할 만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 실패한 것이 바로 회사 내부에서 이뤄지는 무자비한 경쟁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모든 직원을 성과에 따라 서열을 매긴 후 하위권을 차지한 직원들을 강제로 해고하는 스택 랭킹(Stack ranking)은 직원 모두를 지속적인 위협 상태로 몰아넣음으로써 뛰어난 사람이 되겠다는 야심이 아니라 안전해지려는 욕망만을 불어넣었다. 실제 제도 시행 후 회사의 우수한 개발자들은 자신의 등급이 위태로워지는 것이 두려워 성과가 좋은 다른 개발자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행히 마이크로소프트사는 2013년 이 제도의 폐지를 공표했다.

전직 하버드대학교 학장 래리 서머스가 들려주는 얘기도 흥미롭다. 그는 월스트리트의 가장 비밀스러운 헤지펀드 중 하나인 D.E.쇼에서 근무하는 동안 만났던, 너무나도 똑똑하지만 아무것도 공유하려 하지 않았던 동료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회의실에는 똑똑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데 아무도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어요. 상세히 설명하는 순간 그 아이디어는 회사 소유가 되니깐,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을수록 입을 다물죠"

수많은 경쟁의 실패를 보여준 저자가 경쟁에 대한 대안으로 말하는 것은 '협력'이다. '인간의 경쟁심과 욕심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함께 힘을 모아 일하는 것 역시 인간의 본성'이라고 강조하며 승리보다 더 나은 성공을 향해 함께 나아가길 촉구한다. 듣기는 좋지만, 현실적으로는 적용하기 힘든 대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 스티브 잡스조차 애플의 스티브 워즈니악, 픽사의 존 라세티 등 뛰어난 조력자들과 함께 일할 때는 성공했지만 넥스트를 혼자 이끌었을 때는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한다.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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