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이 들어서면 인근 땅도 일반주거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바뀝니다. 그 땅에 맞는 용도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서울시내 준공업지역은 대부분 공장들이 사라지고 인근 여건도 바뀐 만큼 방치된 부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발업계의 한 관계자)
규제에 막혀 사실상 산업시설로의 기능이 용도 폐기된 땅들이 적절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곳이 비단 뚝섬 현대차 부지만은 아니다. 서울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2,744만㎡가 대표적인 사례다.
준공업지역은 지난 1960년대 국가경제 부흥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대표적인 곳이 제조업 공장이 늘어서 있던 영등포구 문래동 일대와 구로구 구로공단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산업구조 변화로 제조업이 정체양상을 빚기 시작했고 경제발전으로 도시가 커지면서 준공업지역 인근이 하나둘 주거지역으로 변모했다. 준공업지역에 들어섰던 제조업체들은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났고 이 과정에서 슬럼화 문제가 발생하자 서울시는 2009년 준공업지역 종합발전방안을 내놓게 된다.
서울시가 마련한 방안은 쇠퇴한 공업지역을 재생해 도시성장을 견인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뉴욕의 롱아일랜드와 같이 낙후된 공업지구를 고밀복합용도로 개발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준공업지역 내에 들어서지 못하게 했던 공동주택을 허용하고 공장뿐만 아니라 산업시설을 짓도록 관련 조례를 개정했다. 낙후된 준공업지역 일대를 서울의 신경제 중심축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리방안이 발표된 후 5년여가 흘렀지만 개발은 지지부진하다. 업계에서는 부동산 경기침체의 탓도 있지만 개발을 가로막는 까다로운 규제도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행 서울시 도시계획조례는 준공업지역 내에 아파트를 지을 때 공장 비율에 따라 해당 용지의 20~40%를 떼어 산업시설을 짓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장 비율이 60%인 3,300㎡ 규모의 땅을 개발한다면 1,980㎡에는 아파트를 짓고 나머지 40%(1,320㎡)에는 아파트형 공장 등 산업시설을 지어야 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토지면적에 관계없이 산업용지 확보 의무가 일괄 적용되기 때문에 대규모 땅 개발만 가능할 뿐 중소형 규모의 필지는 사실상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영등포구 신도림·문래동 일대, 금천구 가산동 일대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 등을 제외하면 공장용지 확보 규정을 적용 받아 개발된 사례는 사실상 서울 강서구 가양동 CJ공장 부지가 유일하다.
서울시가 준공업지역 종합발전방안을 뒤바뀐 환경에 맞게 재정비하기 위한 용역을 연초 발주하지만 이 같은 규제가 완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기보다는 서울시의 유일한 산업기반 용지를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방향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용역 발주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규제완화를 넘어 준공업지역의 땅 용도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개발연대에나 필요했던 준공업지역의 용도를 굳이 고수하면서 개발을 진행하려다 보니 갖가지 규제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처럼 일터가 꼭 공장일 필요가 없이 오피스빌딩에 서비스업종 등으로도 일터를 만들 수 있다"며 "산업시설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성격의 준공업지역의 용도지역을 준주거지역 등으로 바꾸고 거기에 따른 개발이익은 공공기여 형태로 환수하는 게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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