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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으로 움직이는 세일링 요트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도전’일까. 1973년 7월 5일 남미 과테말라 서쪽 해상. 한국수산개발공사 소속 원양어선인 월미 306호는 표류 중인 구명정을 발견했다. 구명정에 탄 이들은 영국 국적의 베일리 부부였다. 인쇄공이었던 베일리씨, 그리고 세무서원 출신의 베일리 부인은 1년 전 세계 일주의 부푼 꿈을 안고 길이 10m, 무게 8톤 규모의 요트를 장만했다. 당시 영국은 1968년 7월 치체스터(첫 요트 세계 일주)와 1969년 로빈 녹스 존스톤(첫 무기항 요트 세계 일주) 때문에 세계 일주 붐이 불어닥쳤던 시기다.
순항하는가 싶던 여행은 갈라파고스를 지나 뉴질랜드를 향하던 중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포경선 작살에 맞아 몸부림치는 고래에 들이받힌 요트가 전복됐다. 구명정에 올라탄 부부는 무려 117일간 망망대해에서 표류했다. 베일리 부부는 그동안 거북이 30마리와 갈매기 8마리, 새끼 상어를 포함해 온갖 물고기를 잡아 날것으로 먹으며 생명을 유지했다고 후일 밝혔다. 당시 영국에서는 이처럼 세계 일주에 나섰다가 소식이 끊긴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세월이 지났지만 세일링 요트 세계 일주는 여전히 위험천만하다. 40년이란 시간 동안 항구에 정박하지 않고, 그 어떤 도움도 없이 홀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이가 불과 5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2010년 호주에서 16세의 앳된 소녀 제시카 왓슨이 이 같은 도전을 한다고 밝혔을 때 온 나라가 걱정을 자아냈던 것도, 7개월 만에 세계 일주에 성공한 그가 일약 국민적 스타로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험난한 길을 헤쳐낸 이가 한국에도 생겼다. 지난해 10월 19일 충남 당진 왜목항에서 ‘아라파니호’를 타고 항해에 나섰던 김승진 선장(54세)이 210일간의 도전을 무사히 마치고 5월 16일 다시 왜목항으로 돌아온다. 적도를 지나 피지-칠레 케이프 혼-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인도네시아 순대 해협을 거친 무려 4만1,900㎞에 달하는 대장정이었다.
김 선장이 탄 아라파니호는 현재 무사히 서해에 진입해 5월 16일 귀항 일정에 맞추도록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김 선장이 세운 기록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다. 단독 무기항 요트 세계 일주는 1969년 영국의 로빈 녹스 존스톤이 세계최초로 성공했다. 이후 1974년 일본인 호리에 켄이치가 270일만에 두 번째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 이후 30여년 간 뜸하던 요트 세계 일주는 2010년 호주의 16세 소녀 제시카 왓슨이 전 세계의 관심을 끌며 항해에 다시 한번 붐을 일으켰다. 2013년에는 중국의 구오추안, 인도의 압히라쉬토미가 뒤를 이어 기록을 세웠다.
단독·무기항·무원조 요트 세계 일주 도전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도를 2회 이상 통과해야 한다. 모든 경로를 한 쪽 방향으로 통과해야 하며, 항해 거리는 4만㎞ 이상이어야만 한다.
김 선장은 본래 국내외 다수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한 PD 경력을 가진 탐험가다. 일반인에게는 KBS의 프로그램 ‘도전지구탐험대’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제작자로 널리 알려졌다. 2001년 뉴질랜드에서 요트에 입문한 뒤 2010년 9월에서 2011년 4월까지 유럽 크로아티아에서 출발 한국까지 단독항해에 성공한 바 있다. 2013년에는 대서양 카리브해에서 한국까지 항해도 했었다.
김 선장은 “이번 항해가 세계기록으로 이야기되기보다는 전 국민의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희망을 전파한다는 의미에서 ‘희망항해’로 불리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김 선장의 항해를 지원하기 위해 꾸려진 희망항해추진위원회는 16일부터 17일까지 충청남도 당진 왜목항에서 환영 및 기념행사를 열 계획이다. 16일 오후 4시 입항식 행사에는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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