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아내 프리실라 챈 박사가 전액 지원해 온 실험적 교육기관 ‘프라이머리 스쿨(The Primary School)’이 결국 폐교 수순을 밟으면서 지역 사회에 충격을 안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자선사업 기조가 급격히 바뀌면서, 민간 자본에 의존한 교육 실험의 한계를 보여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저커버그 부부가 설립한 재단 CZI(챈-저커버그 이니셔티브)는 지난 4월 학부모들에게 2025~2026학년도를 마지막으로 학교 문을 닫겠다고 통보했다. 학부모들은 영상회의를 통해 일방적으로 폐교 소식을 전달 받았고 지역 학군은 갑작스러운 대체 수용 계획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하지만 교육청 관계자는 “레이븐스우드 공립학교로 일부 학생을 수용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재정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우려했다. 해당 학군은 지난 10년간 이미 두 곳의 학교를 폐쇄한 바 있다.
이 학교는 2016년 캘리포니아 이스트팔로알토에 문을 열었으며, 유아부터 8학년까지 약 40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학생의 90% 이상이 라틴계, 아시아계, 흑인 또는 다인종이며, 대부분이 저소득층 가정 출신이다. 수업료 없이 운영되는 이 학교는 학업 뿐만 아니라 무료 건강검진, 정신건강 서비스, 부모 상담까지 통합 제공해 ‘전인교육’ 모델로 주목받았다.
한 학부모는 “챈 박사가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했지만, 이제 그 약속은 버려졌다”고 WP에 토로했다. 또 다른 학부모 샤넌 토드는 “세 자녀가 모두 이 학교에 다녔고, 일반 공립학교에서는 받을 수 없는 다양한 지원을 경험하고 있었다”며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하다”고 말했다.
학교 운영의 전환점은 2023년 공동 설립자이자 실무 책임자였던 메러디스 리우 대표의 갑작스러운 사망이었다. 이후 프리실라 챈 박사의 학교 방문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운영에서도 점차 거리를 두는 모습이 나타났다고 전직 관계자들은 전했다.
CZI는 폐교를 알리며 학생당 1000~1만 달러의 교육 보조금과 지역 학군에 2650만 달러의 보전 예산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학부모들은 “지원금보다 교육 기회를 잃은 상실감이 더 크다”는 반응이다. 이번 폐교 결정은 CZI의 자선사업 재편과 맞물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이후, CZI는 형사사법 개혁, 이민 정책, 다양성과 포용(D&I) 같은 사회적 의제를 축소하고, 바이오·AI 등 과학기술 중심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몇 달간 커뮤니티 지원팀 해체, 주택 정책 프로젝트 종료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CZI의 최고운영책임자 마크 말란드로는 내부 이메일에서 “이제는 생물학의 한계를 넘는 기술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 사회에서는 이번 폐교 사태를 놓고 초거대 자산가의 개인 자본에 기반한 교육 실험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지역 활동가 키라 브라운은 “Z세대의 미래를 사적 자본이 좌우하는 구조 자체가 문제였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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