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사법부를 죽였다.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파기환송 판결을 한 후 사법부 내외에서 발생한 일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미 무너졌음을 확실히 보여줬다. 옳든 그르든,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대법원의 판결은 사법부의 최종 결정으로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과 정치로 물든 검찰·경찰은 물론 마지막 보루였던 법원마저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민주당은 무죄 판결하면 정의가 살아 있고 유죄로 판결하면 사법부가 정치를 한다면서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탄핵하겠다고 겁박했다. 그들에게 사법부는 자신들이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무죄’로 판결해 주는 거수기여야 한다. 압도적 의석을 믿고 형사소송법은 대통령 재임 중 재판 중지를 하고 공직선거법은 허위사실 공표죄 자체를 없애는 개정안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이 후보 한 사람을 위해 법을 이리 고치고 저리 바꾸는, 그야말로 ‘위인입법(爲人立法)’을 쏟아내고 있다. 형사 피고인을 대선 후보로 선택한 것만으로도 국민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행위인데 그 피고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어떤 범죄를 범해도 처벌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후안무치한 일을 벌이면서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른다. 이 정도면 민주당은 이 후보만을 위한 정당이나 다름없다. 그 많은 민주당 국회의원들 중 단 한 명도 이런 반민주적 행태에 반대 의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당초 15일로 예정됐던 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은 민주당의 겁박과 법원 내부 일부 판사들의 대법원에 대한 비판에 굴복해 아예 대선 이후인 다음 달 18일로 연기됐다. 이 후보가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다른 사건들도 줄줄이 대선 이후로 미뤄졌다. 이 후보와 민주당으로서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형사소송법과 공직선거법을 개정하고 동시에 다른 사건의 관련 법률도 바꾸면 모든 범죄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계산일 것이다. 그도 안 되면 판결 직후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을 행사해 ‘셀프 사면’을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정치인은 그렇다 치고 법원 내부에서 대법원 판결을 비판한 판사들의 주장을 보니 법리에 대한 비판은 없고 이 후보에게 불리하다고 인식된 과정의 신속함과 결과의 유죄만을 비난하고 있다. 합리적 비판이 아니라 스스로 ‘정치 판사’임을 인정하는 근거 없는 비난이 아닐 수 없다.
국회는 이미 장악했고 판결에 따라 법원도 존중 혹은 비난하거나 관련 판사를 탄핵하면 그만이다. 그런 민주당이 대통령 권력까지 한 손에 거머쥐면 이 나라는 어찌 될까. 사법부의 독립성과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과거의 역사가 될 것이고 헌법재판관 두어 명만 바꾸면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존재가 된다. 나라가 이렇게 위기인데 정치적으로 민주당을 견제할 유일한 세력인 국민의힘은 후보 단일화를 두고 알량한 자리싸움이나 하고 있다. 어리석은 정치인과 국민이 스스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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