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이렇게 결제를 해 버려야 고만(그만) 미루지” “나는 피검사만 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서 평생 바닷일을 한 관식은 관절염을 달고 살았다. 딸 금명의 권유로 미뤄왔던 건강검진을 받은 관식은 관절염인 줄 알았던 증상이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혈액암을 진단받는다.
드라마 속 관식처럼 남성들은 아픈 곳이 있어도 여성에 비해 진료를 꺼린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25일(현지 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가 지난 2월 잉글랜드 주민들의 지역 의료 서비스 경험을 조사한 결과 여성의 45.8%가 “한달 간 지역 주치의(GP)로부터 자신 또는 가족의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반면 남성은 33.5%에 그쳤다. 국민보건서비스는 영국에서 시행되는 공공 의료 서비스 체계로,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남성들은 지역 내 치과에 등록하거나 약국을 찾는 등의 경험도 여성에 비해 드문 경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NHS가 40~74세를 대상으로 5년마다 제공하는 건강검진의 경우 남성의 참여율이 40% 이하라는 통계도 확인할 수 있다.
남성들은 병원을 찾는 것에 사회적인 인식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NHS가 남성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8%는 “아픈 것도 견뎌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고 답했으며, 3분의 1은 “아프다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나를 나약하다고 여긴다”라고 응답했다.
영국 요크 대학교의 폴 갈다스 교수는 “남성들은 아픈 증상이 일상생활을 방해할 때까지 병원 진료를 미루는 경향이 있다”면서 “의료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남성에게 요구되는 ‘독립심’과 ‘유능함’, ‘강인함’에 어긋난다고 여긴다”고 분석했다.
병원의 진료 시간이 근무 시간과 겹치는 것 또한 남성들의 병원 이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사무직이 아닌 건설현장이나 공장 등에서 일하는 남성의 경우 시간을 내 병원을 다녀오거나 병원을 예약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다.
또한 여성은 가족들의 건강을 살피고 검진을 통해 질병을 발견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는 반면, 남성은 “고작 이 정도로 병원에 가는 건 사치”라며 증상이 있어도 진료를 미루기 십상이라는 이유에서 병원을 덜 찾게 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차이가 평균 수명의 성별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보건부에 따르면 잉글랜드에서 75세 이내에 사망하는 사람은 인구 10만명 당 남성이 420.1명으로 여성(267.4명)을 크게 앞섰다. 남성의 기대 수명 또한 여성보다 4년가량 낮다.
전문가들은 남성들이 건강을 관리하는 태도가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사회적 요인이 많다고 지적했다.
갈다스 교수는 “남성의 요구에 맞춰 서비스를 재설계하면 남성의 건강검진 참여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건강 관리를 지원하고, 유연한 접근성을 제공하는 등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신 건강, 암 치료, 건강 검진 분야에서 성별 대응 프로그램를 도입하면 더 많은 고령의 남성들이 진료를 받으러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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