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다리가 봄바람에 출렁였다. 순간 최대풍속 10m/s 이하였지만 흔들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중년 여성 몇 명이 걸음을 멈췄다. 다리 난간을 붙잡은 채 사시나무 떨듯했다. 어린아이들은 그런 어른들 보란 듯 다리 한복판 미디어글라스 위에서는 깡충깡충 뛰었다.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미디어글라스에서 균열이 거미줄처럼 퍼져나갔다. 효과음에 착시효과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중년 여성들은 몸서리쳤다. 그걸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벚꽃처럼 환해졌다.
지난 12일 오후 찾은 여주 남한강 출렁다리는 5월1일 정식개통을 앞두고 이 고장의 새로운 명물을 미리 보기 위해 몰려든 수백 명의 시민들로 북적였다. 임시개통이라 아직까지는 주변 일대 정비가 덜 된 상태였지만 때마침 피기 시작한 벚꽃과 진달래가 강변을 촘촘히 채우기 시작해 완연한 봄 기운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남한강 출렁다리는 여주시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경기 동남부에 위치한 여주는 조선시대부터 쌀을 비롯해 질 좋은 농산물과 우수 도자 생산지로 이름이 높았다. 하지만 도시를 가로지르는 남한강 때문에 오랫동안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개발이 제한됐다. 상류가 충주댐이어서 앞으로도 이 같은 규제가 풀리기는 쉽지 않은 상태다.
여주 토박이 이충우 여주시장은 개발이 제한된 시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다 관광산업 육성으로 진로를 정했다. 2025년을 ‘여주 관광 원년의 해’를 선포한 것은 이 같은 고민의 산물로, 지역 관광 활성화의 핵심 거점이 바로 남한강 출렁다리다. 신륵사관광지와 금은모래유원지를 잇는 총 길이 515m의 이 국내 최장 보도 현수교는 도시발전에는 장애물이지만 빼어난 경치로 이름난 남한강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한다. 특유의 흔들림에 벌집처럼 뚫린 철망 아래로 남한강 물결이 그대로 보여 심약한 사람들은 주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다리를 걷는 동안 내내 느끼는 스릴이야말로 이 다리만의 매력이다. 여주시는 높이 45m의 주탑 2개에서 늘어뜨린 강철 케이블이 다리를 지탱하고 있어 성인 1200명이 동시에 올라가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강조한다.
정식개통을 앞둔 여주시민들의 기대감은 자못 컸다.
점봉동에서 온 신현규(75)씨는 “평생을 살아왔지만 여주가 발전이 더뎌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며 “그래도 여주는 신륵사, 고달사지, 명성황후 생가 등 명소가 많다. 쌀도 이천 못지않게 좋아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밥이 맛있다. 출렁다리는 이런 걸 하나로 연결하는 것 같다. 홍보가 많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신면에 산다는 임윤도(50·여)씨는 “집에서 15분이면 오아는 거리인데, 지을 때부터 기대가 돼 오늘 처음 왔는데, 겁이 많 포기하고 바라만 봤다”며 “올해가 여주 관광의 원년 해라서 많은 분들이 왔으면 좋겠다. 다음번 정식 개통할 때에는 다시 도전해보겠다”고 말했다.
임 씨는 “출렁다리에서 관광명소가 다 가까운 곳에 있다. 다리 건너편에는 뷔페가 유명하고, 강변유원지도 좋다. 경강선을 타고 오면 프리미엄아울렛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쌀밥, 옹심이, 해물찜은 여주가 맛있다”고 자랑했다.
현암동에서 부모와 함께 놀러 왔다는 오서진(11)군은 “유리(미디어글라스) 깨지는 소리 듣고 깜짝 놀라고 무서웠지만 익숙해지니까 너무 재밌다”며 “앞으로 친구들하고 자주 오고 싶다”고 말했다.
침체된 주변 상권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엿볼 수 있었다.
남한강에서 45년 째 보트운영을 해왔다는 박창식(73) 신륵황포돗단배 대표는 “코로나에 이어 불황이 오래 돼 여러 고민이 있었다”며 “강에서 다리를 올려다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배를 타면 남한강 정취도 더 가깝게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박용남(73) 시민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여주지회장은 “출렁다리 주변으로 3km 맨발걷기 코스가 조성됐다”며 “단순히 관광만 오는 것이 아니라 건강권회복운동 차원의 체험으로도 와볼 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지회장은 “여주는 일제시대 때만해도 기차가 일찍 들어올 정도로 발전한 곳이었다”며 “그동안 남한강 때문에 규제에 묶여 발전을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관광만이 살길이다. 여주의 꿈이다. 출렁다리를 널리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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