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인용이든, 기각이든, 각하든 헌재 재판관 8명의 판단에 따라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윤 대통령의 경우 헌재의 변론 종결에서부터 선고까지 이전 대통령 탄핵 관련 최장 기록인 14일이 이미 지났다. 이 때문에 야당은 헌재가 시간을 끌고 있다며 전방위 압박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명색이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다. 아무리 ‘속도’에 죽고 사는 한국이라도 탄핵은 꼼꼼히 엄중하게 다루는 게 맞다. 그게 후환을 줄이는 길이다.
이쯤에서 현재 대한민국을 반쪽으로 쪼개고 있는 탄핵의 맥락을 한번 되짚어보자. 윤 대통령은 자신의 계엄 선포 원인 중 하나로 감사원장 등 29명이나 되는 공직자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묻지 마 탄핵을 꼽고 있다. 이는 1948년 정부 수립 후 발의된 총탄핵 건수(21건)보다 많다. 지난 3년간 우리 정치가 얼마나 탄핵을 사유화·정략화, 그리고 희화화했는지 드러난다. 아시다시피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헌재로 넘어온 13건 가운데 8건에 대한 심판이 이뤄졌는데 100% 기각됐다.
이런 결과를 예상했는지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탄핵 남발에 대한 질문에 “(우리 측) 잘못이 없지 않지만 헌법적 질서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의 계엄은 헌법 테두리 밖이지만 줄탄핵은 그 정도는 아니라는 취지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라면 대외적으로 하기 민망한 수준의 발언이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당의 이익은 기어이 사수했지만 공익과 국익을 해쳤다면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게 공당의 대표다운 처신이지 않을까 싶다.
탄핵 폭주로 우리 사회가 감내해야 할 대가는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4억 6000만 원에 이르는 변호사 수임료 등이 모두 나랏돈으로 지급됐고 수장의 직무 정지로 조직이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는 데 따른 수습 비용 등은 애교 수준이다. 정부·국가 신인도 하락은 물론 글로벌 무대에서의 한국 패싱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이뿐인가. 근본적으로는 정치의 사법화로 헌재의 영향력이 비대해졌고 이로 말미암은 사법과 정치의 유착, 삼권분립 약화, 국민의 분열은 민주주의의 기둥마저 좀먹고 있다.
깃털처럼 가볍게 다뤄진 탄핵의 가장 실감 나는 폐해는 뭐니 뭐니 해도 다혈질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게끔 빌미를 준 점이다. 시대착오적 계엄의 책임은 분명 윤 대통령에게 있다.
하지만 수 틀리면 탄핵을 일삼은 민주당도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총 192석(민주당 170석, 조국혁신당 등 범야권 포함)에 영향력이 막강한 이재명 민주당 체제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했다는 역설이 대한민국의 딜레마요, 비극이다. ‘갈등 조정’이 본령인 정치를 내팽개치고 세상의 철리를 따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법에 모든 판단을 맡기는 출발점에 ‘탄핵 남발’이 똬리를 트고 있다는 생각이다.
결국 국회의원들이 탄핵의 무게감을 느끼게끔 제도적 보완에 나서야 한다. 탄핵소추부터 하고 증거는 나중에 찾겠다는 발상부터 문제다. 탄핵 선고가 번번이 기각된다는 얘기는 좀 심하게 말하면 국회의원이 무고죄, 업무방해죄, 국고 손실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탄핵 발의 전에 제대로 조사하는 절차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탄핵의 근거라 할 탄핵소추안의 완결성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구체적 위법 내용 없이 미확인 소문, 일방적 주장 등이 소추안에 담겨서는 곤란하다. 실제 국회의원들이 ‘날림’ 탄핵에 길들여져 국회 통과 당시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들어갔던 내란죄가 헌재 심판 과정에서 빠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 헌재가 얼렁뚱땅 넘어간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국내 정치에서 탄핵은 언제부터인가 세상 만만한 대상으로 변질됐다. 이를 방치한 나머지 우리 사회는 압력밥솥처럼 폭발 직전이다. 탄핵을 유리그릇처럼 조심스럽게 다루지 못한 대가가 혹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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