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재가 ‘경제적 강압(economic coercion)’ 문제로 부각되며 미중 간 공방전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이 백악관 차원에서도 동맹과 함께 이 문제에 대처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중국은 “경제적 강압은 미국이 더하다”고 반발했다. 이 와중에 중국 정부가 이미 몇 년 전부터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줄이고 자국 및 한국 기업의 반도체 구매를 늘려온 사실도 확인됐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24일(현지 시간) 중국의 이번 조치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공동성명 발표 직후 이뤄졌다는 점을 거론하며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해 G7이 취한 강력한 기조를 훼손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마이크론 제재는 근거가 없다. 시장을 개방하고 투명한 규제 프레임워크에 전념하고 있다는 중국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중국 정부 때문에 발생한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왜곡을 다루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은 마이크론에 대한 조치는 적법했으며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부당하게 중국 기업을 제재하는 것은 오히려 미국이라고 비판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미국이 근거 없이 1200개 중국 기업을 제재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한 뒤 “중국 기업들을 부당하게 억압하기 위해 안보 문제를 오용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마이크론을 사이에 두고 미중 양국이 이처럼 정면 충돌하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지고 있다. 앞서 미 의회에서는 마이크론에 대한 중국의 제재로 생긴 공백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메우면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미 행정부 차원에서는 ‘한국 등 동맹국과 협력하겠다’는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맞서겠다는 G7의 기조가 분명해 한국 정부도 미국의 요청을 외면하기가 점점 어려운 상황이 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이미 수년 전부터 마이크론과의 단절을 준비해온 정황도 이날 포착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00건 이상의 중국 정부 입찰 내용을 검토한 결과 2020년 이전에는 마이크론 반도체가 중국 중앙부처와 지방정부의 다양한 사업 등에 사용됐지만 최근 3년 동안에는 4건에 불과했다. 중국이 입찰 대상을 중국산 제품으로 한정하면서 화웨이·유니크·하이크비전 등의 반도체가 주로 구매됐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의 반도체는 일부 보완 용도로 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크론 구매가 줄어든 명확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중국 정부가 미국에 대한 기술 의존을 줄이고 자국산 제품 사용을 장려하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미중 양국은 이 같은 갈등에도 대화 기조를 이어갈 방침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이 25일 만찬을 한다고 보도했다. 커비 조정관도 “마이크론 사태가 미중 관계의 해빙을 시도하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더 큰 노력 자체를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취지로 이날 답변했다. 한편 미 의회조사국(CRS)은 이날 미국의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투자 지원이 한국·대만·중국 등에 비해 작은 수준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CRS는 중국을 “생산 규모와 역량 모두에서 현재는 뒤처져 있지만 대규모 정부 투자와 핵심 장비 및 외국 반도체 기업 인수로 경쟁국들을 따라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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