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 울었어야 했다. 목 놓아 통곡이라도 했다면 한(恨)으로 남지나 않았을 일. 심장 저미는 슬픔도, 가슴 터지는 억울함도 새기지 않았을 것을…. 화가는 그림을 통한 애도를 결심했다. 인간의 내재된 고독과 심적 번민을 인물화에 담아내는 화가 이인혜가 개인전 ‘애도 1948, 치유와 해원의 시작’을 전남 여수시 GS칼텍스 예울마루 내 장도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지난 8월 예울마루 창작스튜디오의 단기 입주작가로 이곳 섬에 들어온 그의 보고전 성격을 겸했다.
여수로 오기 전, 작가는 도시의 역사를 되짚었다. 1948년 10월 19일, 제주4·3사건의 진압을 명령 받은 여수 제14연대가 “동족상잔을 반대한다”며 저항했고 이를 반란으로 규정한 정부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내려 민간인까지 희생당한 ‘여순사건’. 전시제목의 ‘1948’이 이를 가리킨다. 출품작 90점 중 70점이 여수 사람들이다.
“여수에 도착한 날, 지역 작가들과 역사가 서린 곳들을 돌아본 후 인사 드린다는 생각에 위령비로 향했어요. 비석 뒷면에 영문 모른 채 죽어야 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있었는데, 연좌제로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한 후손들에 의해 지워진 이름도 상당했어요. 피해자이건만 억울함조차 드러내지 못한 그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애도’에 이르렀습니다.”
화가의 애도는 ‘흐느낌’과 ‘기도’의 두 가지 풍경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의 발 아래서 흐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울게 하소서’라는 부제를 달았다. 통곡 끝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해 막혔던 숨을 내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울음 속에 자신도 모르게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이도 있다. 지역 대안학교의 교장 부부, 섬을 지켜주는 경비원들과 페인트공, 향토사학자와 스님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을 빌려오되 표정과 자세는 작가적 상상력으로 빚었다.
기도하는 어린 주인공들은 ‘애양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다. 여수 애양병원은 한센병 치료와 재활을 위해 세워진 곳이다. 차별과 혐오의 극복을 상징하는 애양(愛養·사랑으로 기르다) 정신이 오케스트라의 예술정신으로 이어졌기에,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며 찾아갔고 부모동의를 얻은 11명 어린이의 얼굴을 담았다. 손 모은 아이의 두 볼에, 눈 감은 아이의 이마에 밝고 따뜻한 빛이 내려 앉았다.
“아이들은 화해와 치유의 힘이 있어요. 눈과 입, 볼은 더 사랑스럽게 그리고 기도하는 손은 실제 인체비례보다 더 크게 그렸더니 꼭 미켈란젤로의 천사를 닮은 듯 보이네요.”
이화여대를 졸업한 이인혜 작가는 러시아에서 유학했다.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화풍의 생생함과 루벤스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북유럽 르네상스의 풍요가 그림에 공존한다. 현실을 극복하고 희망을 써 가는 작가만의 방식이다. “3개월 입주 기간에 108장의 초상화를 그리겠다”고 마음 먹었더니 정교함과 깊이감을 추구한 평소의 제작기법으로는 시간이 빠듯했다. 그는 “질기고 오래 가기로 유명한 안동한지 삼합지에 먹물을 입히고 그 위에 아크릴물감으로 바탕을 만든 다음, 파스텔로 그리니 속도감 있으면서도 기존 작업의 느낌이 났다”고 설명했다. 새까만 배경 위에서 인물은 더 밝게 빛난다.
이인혜 작가와 여수의 인연은 남편이자 천재 구상조각가로 불린 류인(1956~1999)과의 추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추상화가 류경채(1920~1995)의 아들인 류인에게 여수는 아버지의 고향이었고, “나중에 여기서 같이 살자”고 했던 약속의 땅이었다.
“나는 류인이 죽었는데도 울지 않았어요. 솔직하지 못했던 그 감정이 묵은 상처가 됐어요. 애도란 상실과 상처의 치유과정입니다. 충분히 고통스러워 하고 그 기억에 몰두한 후에야 비로소 회복이 가능해지니까요. 이번 전시는 나와 여수 모두를 위한 기도의 결과예요.”
그는 최근 류인의 유작 70점을 여수시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시(市)는 기증작을 위한 조각공원 등 활용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는 11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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