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기업의 독자 경영을 법제화하는 내용을 검토하는 등 시장경제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대북 제재로 북한 노동당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자 각 기업체들에게 ‘자력갱생’을 주문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6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노동당은 지난 25일 김덕훈 내각 총리 주재로 내각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열고 기업의 독자적인 생산·경영 활동을 법으로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박정근 부총리는 "기업체들이 생산과 경영 활동을 독자적으로, 주동적으로 진행하면서 창발성을 최대한 발휘하고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경제적 조건과 법률적 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보다 강력하게 세울 데 대한 과업"을 보고했다.
당은 이날 회의에서 북한 판 시장경제 제도로 꼽히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통신은 "금속 공업과 화학 공업 부문 공장, 기업소들에 필요한 노력·설비·자재·자금을 집중적으로 대주고 국내 연료로 철강재를 생산하기 위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며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요구에 맞게 경영 관리, 기업 관리를 개선할 데 대한 문제가 토의됐다"고 전했다.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란 기업의 경영 권한을 현장에 확대 부여하는 북한의 경제 제도를 말한다. 계획 수립에서부터 생산, 그리고 생산품 및 수익의 처분까지 기업의 권한을 대폭 늘린 것이다. 가격과 임금을 당이 결정하는 기존 시스템에서 탈피해 생산량·가격을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차등 임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같은 기업책임관리제를 지난 2012년 국무위원장 취임과 동시에 언급한 이후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김 국무위원장은 지난 2012년 12·1 경제개혁조치를 통해 이같은 제도를 언급했다. 이후 2014년 담화를 통해 기업책임관리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2019년 4월에는 김일성 주석 이래로 내려온 ‘대안산업체계’를 당헌에서 삭제하고 기업책임관리제로 대체하기도 했다. 대안산업체계란 당이 최고 지도기관으로서 해당 기업을 집단적으로 관리 운영하고 기업 활동의 결과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대북 제재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지니, 북한 당국 역시 기업 일선에 수익과 지출을 맡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 교수는 “(기업의 독자 경영을 법제화한다는) 내용 자체는 파격 조치임은 분명하지만, 김 국무위원장이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 국가주석이 ‘누구나 부자가 되라’라고 말한 정도의 조치가 따르지 않는다면 하부에서 시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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