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통치권 붕괴로 전국이 술렁이는 가운데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정해진 공식 일정을 수행했다. 청와대 근무자들 대부분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정치권 출신 간부들은 “리더십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국가 최고 통치 기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을 접견하고 한국과 OECD의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오후 박 대통령은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를 받았다.
이처럼 박 대통령이 미리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는 가운데서도 청와대 내부 분위기는 크게 흔들렸다.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과 일정 부분이라도 정무적 역할을 하는 정책조정·민정·정무·홍보수석은 짐가방을 준비해야 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청와대 내부에서도 흘러나왔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정호성·이재만·안봉근 비서관은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청와대 근무자들 사이에서도 우세하다. 최근 청와대를 떠난 한 전직 행정관은 “그간 아무것도 모르고 청와대 근무를 했다니 침통할 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각 부처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 출신 청와대 근무자들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분위기였다. 한 경제부처에서 파견 나온 국장급 행정관은 “비선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없고 들은 바도 없어 솔직히 이번 일은 날벼락이나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또 다른 국장급 행정관은 “솔직히 그간 일을 하면서도 이게 대통령 관심사항인지, 수석비서관 지시사항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면서 “실무부처 또한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힘들어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들어온 청와대 근무자들의 분위기는 다르다. 한 청와대 행정관은 “박 대통령의 25일 사과와 지난 발언들에 무슨 거짓이 있고 어떤 문제가 있느냐”면서 “곧 지도력을 회복해 국정을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 다른 정치권 출신 근무자는 “아마도 박 대통령이 뭔가 새로운 카드를 제시할 것”이라면서 “남은 임기, 국정을 주도할 전력과 에너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외부 인사들은 다르게 평가하고 있다. 야당도 반대하지 않는 화합형 인사를 총리로 즉각 기용해 내치 전반을 맡기지 않는다면 국가 통치 시스템의 신뢰 회복은 어렵다는 것이다.
과거 정권에서 청와대 근무를 했던 한 인사는 “지금 유력한 여권 차기 주자가 없어 리더십 대체가 안 되는 게 가장 큰 문제 아니냐”면서 “그렇다면 평소 박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온 여야의 중량급 정치인을 총리로 전격 기용하는 게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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