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 거실에 둘 벽시계가 필요했다. 문화 담당 기자로 뭔가 색다른 것을 놓고 싶었다. 이왕이면 좋은 그림이 어떨까. 우리 전통 회화작품을 바탕에 깔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런 생각으로 서울 시내 박물관과 전통 기념품점을 뒤졌다. 생각보다 물건이 없다. 겨우 찾은 것은 조선 민화인 화조도(꽃과 새의 그림)가 바탕에 그려진 시계 한 종류다. 그것도 국내 최대라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재고가 없어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까지 가서 살 수 있었다.
문득 든 생각인데 그동안에도 전통 회화 벽시계를 본 기억이 없다. 원래부터 만들지를 않았으니까 그랬던 것이다. 기자가 파악하기로는 화조도 외에는 크기가 작은 묘도(고양이)와 화도(꽃) 두 종류의 벽시계가 현재 유통되고 있다.
이유가 최근에야 분명해졌다. 지난 1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우수문화상품’으로 지정된 문화상품을 공개했다. 브랜드 ‘K리본 셀렉션’을 부착한 상품들이다. 거창하게 ‘우리의 문화적 가치를 담은 상품을 우수문화상품으로 지정해 통합된 브랜드 마케팅으로 해외에 널리 알리고 유통되도록 함으로써 코리아 프리미엄을 창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올해 첫 사업으로 35점이 지정됐다. 공예품 11점, 한식 1점, 식품 10점, 한복 13점이다. 공예품은 그릇과 찻잔 같은 것이고 한식이나 식품은 홍삼·된장·김치, 그리고 한복이다. 문화상품인데 모두 ‘전통’에 기반한 상품이다. 우아한 분위기는 살릴 수 있겠지만 최첨단 한국을 표현하는 현대적 상품은 아니다. 원래 의도인 ‘문화적 가치를 담은 상품’이 아니라 그냥 ‘전통문화 상품’에 불과하다. 일반 공산품은 보이지 않는다. 문체부·문화재청 산하 박물관에서 시계를 많이 팔지 않는 이유다.
문체부의 설명을 대략 이해하면 이렇다. 우수문화상품은 문체부 관할의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근거로 한다. 이 법률에서 규정하는 문화산업과 문화상품은 말 그대로 영화·음악·출판·방송·문화재·캐릭터·전통의상·공예품 등이다. 만약 도자기로 만든 벽시계라면 ‘도자기’보다는 ‘시계’에 속하게 되는데 이는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의 권한을 벗어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즉 산업통상자원부 등 다른 부처와 관할이 충돌한다는 이야기다.
우수문화상품의 범위는 한정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그렇게 외쳐온 산업 융복합과 함께 ‘산업의 문화화’에도 배치된다. 산업의 문화화가 안 되면 문화의 산업화도 요원하지 않을까. 문체부는 향후 계획으로 “우수문화상품이 관광 콘텐츠와 일반 공산품까지 포괄하도록 법·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한다.
전통은 전통이고 기술은 기술이라는 고정관념은 이제 벗어날 때다. 우리의 첨단 정보기술(IT)에다가 전통미를 담은 작품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chs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