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래(79) 효성그룹 회장 측이 8,9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통한 탈세·배임·횡령 혐의에 대해 "기업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을 뿐 사적 이익을 취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김종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조 회장과 장남 조현준(46) 효성 사장 등 5명에 대한 첫 공판에서 조 회장 측 변호인은 "이 사건 분식회계 등은 1970~1980년대 국가 주도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 하에서 발생한 회사 부실을 처리하기 위해 이뤄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현재의 잣대로 모든 일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이헌재 전 금융감독원장의 저서 '위기를 쏘다', 이관우 전 한일은행장의 자서전 '장미와 훈장' 등에 기술된 당시 기업들의 절박한 상황을 인용하기도 했다. 변호인은 "검찰은 효성이 부실을 정확하게 공개한 후 정리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기업들은 부채비율 200%를 맞추지 못하면 무조건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며 "그룹과 임직원들의 생존이 달린 상황에서 우선은 부실을 숨긴 후 나중에 돈을 벌어 메꾸자고 생각했던 경영자의 심경을 헤아려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실제로 효성은 이익을 내서 부실을 정리했고 그 결과 주주와 채권자, 금융권 어디에도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며 "부도가 나 공적자금이 투입된 적도 없으며 오히려 손실을 비용 처리 못해 법인세를 더 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변호인 측은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수익 전액을 해외 현지 자회사의 부실 해결에 사용했을 뿐 개인 사용은 전혀 없었다"며 "세금증빙서를 조작한다는 등의 부정한 행위도 없었고 조세회피 사실이 알려진 후 미납 세금은 물론 가산세까지 덧붙여 모두 납부한 점도 참작해달라"고 설명했다.
이날 조 회장은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비서진의 부축을 받은 모습으로 재판이 열리기 20분 전인 9시40분께 법원에 도착했다. '심경이 어떤가'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고 법정에서도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조 회장이 법정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1월 검찰 기소 후 5개월 만이다.
조 회장에 대한 재판은 앞으로 매주 월요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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