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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숨은 손맛에 멈춰선 식객의 발길

제천약초쟁반요리 맛보니 힘이 불끈<br>순흥 전통 묵사발 '묵은 맛'의 진미<br>특급한우 덕인관 떡갈비 씹는맛 일품

담양 덕인관 떡갈비

순흥 전통묵을 만드는 정옥분 씨 모자

순흥전통묵밥

이창호 대보명가 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광진(오른쪽) 세종호텔 주방장

■ 호텔 주방장의 팔도 별미기행 이광진 세종호텔 주방장은 지난 10여년 동안 매년 5~6월이면 지방의 숨은 맛집을 찾으러 출장길에 오른다. 맛집 사장을 만나 음식 맛을 보고 조리법을 익히고 듣고 맛본 것을 연신 수첩에 적는다. 호텔 주방 경력이 25년이나 된 그로서는 일종의 '개인 과외'인 셈이다. 그의 출장은 세종호텔 한식당 은하수에서 매년 진행하는 '팔도별미전'을 위해서다. 세종호텔은 더위로 입맛이 떨어지는 7~8월에 손님을 끌기 위해 지난 1988년부터 이 행사를 시작했는데 이 주방장은 97년 입사 이래 매년 한식조리팀 직원들과 행사를 준비해왔다. 전수받은 조리법은 호텔 스타일과 이 주방장의 스타일에 맞게 약간의 변형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른다. 세종호텔은 올해도 오는 8월말까지 ▲서울ㆍ경기의 어선, 소꼬리찜, 규아상, 칠절판 ▲강원도의 나물 모듬 쌈밥, 생더덕구이, 오징어순대 ▲충청도의 수제 모듬 순대(인삼순대, 약초순대 등), 민물장어구이, 약선요리 ▲전라도의 홍어찜, 떡갈비구이 ▲경상도의 전통 묵밥, 오징어 불고기, 멍게 비빔밥, 초교탕, 제주도의 홍합초, 빙떡 ▲이북5도의 원산잡채와 행적, 가자미 식해 등 100여가지 팔도 음식을 선보인다. 지난달 16일 제천 약초밥상, 순흥 전통 묵밥, 담양 떡갈비 등의 조리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탐방길에 오른 이 주방장과 한식팀 김미경, 박종혁 조리사를 따라 충북ㆍ경북ㆍ전남 3도 순례길을 동행했다. ◆ 충북 제천 '대보명가'의 약선요리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이 있다. 약과 음식은 근본이 같다고 해 음식만으로도 몸의 질병이나 기력이 쇠하는 것을 다스릴 수 있다는 뜻이다. 2007년 충북 제천에 문을 연 대보명가는 약식동원을 표방하는 음식점으로 전국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 집의 대표 음식은 제천약초쟁반요리(5만5,000원). 지난해 열린 제12회 충북향토음식경연대회에서 대보명가는 제천에서 나는 산야초와 송이, 표고 등 8가지 버섯, 구기자, 연자, 은행, 잣 등의 각종 씨앗과 한우수육을 활용한 이 요리로 금상을 수상했다. 요리 사진을 찍는 작가였던 이창호 사장은 국내 식품회사 광고사진을 찍으면서 믿고 먹을만한 음식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돼 친구들과 음식점을 차려 한방음식을 선보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 사장은 "당초에는 일주일 전 예약을 받아 손님의 사상체질을 진단해 음양오행 체질밥을 선보이려고 했는데 여건이 맞지 않았다. 대신 성별로 나눠 당귀물로 지은 밥(여성용)과 재래삼으로 지은 밥(남성용)을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천약초쟁반요리는 보기에는 짙은 갈색 국물이 한약재처럼 쓸 것 같지만 막상 국물을 마셔보니 깊으면서도 은근한 약초 향이 입안을 채운다. 흔히 궁합이 맞지 않는 재료로 알려진 부추와 소고기가 쟁반에 한데 있는 것을 본 이 주방장이 "궁합이 맞지 않는 음식을 쓸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이 사장은 "체질음식은 극약적인 약재가 아니라면 한 두 번 먹었다고 큰 탈이 나지 않고 특히 다섯 가지 이상 재료를 섞으면 독기를 잠재워 웬만한 재료는 함께 쓸 수 있다"고 답했다. 이 집의 별미는 또 있다. 1인당 1만원에 건강만찬을 즐길 수 있는 약초밥상이다. 식전 음식으로 차전자를 뿌린 참마튀김, 궁중떡볶음 등이 나오고 반찬으로 산야초 장아찌, 고춧잎튀김, 김 장아찌, 사과장아찌, 오가피잎+삼+민들레잎무침, 숯불고추장구이, 참치 조림 등이 한 상을 가득 채운다. 어느 음식 하나 인공 조미료를 쓴 것이 없고 파, 마늘도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 조리장은 "고집스럽게 건강식을 표방하는 모습에 많이 배우고 간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043)643-3050 ◆ 경북 영주 '순흥 전통 묵집'의 전통 묵사발 단일 메뉴로 명성을 떨치는 음식점은 왠지 그 집만의 숨겨진 조리법이 가문 대대로 내려올 것만 같다. 한여름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부엌의 부뚜막에 앉아 묵을 쑤고 있던 정옥분(78) 씨 모자를 보니 이 집의 비법이 더욱 궁금해진다. "보통은 메밀가루를 물에 풀어서 묵을 쑤잖아. 나는 직접 통메밀을 맷돌에 갈아 앙금을 모아쓰지." 음식은 손 맛, 정성 맛이라고 했던가. 30여년간 묵을 쑤었던 손으로 가마솥 장작을 때고 통메밀을 맷돌로 갈아 앙금을 걷어내기를 수 차례 반복한 끝에 고소한 메밀묵을 얻는다고 하니 정 씨의 부지럼함과 정성이 비법이라면 비법이었다. 결국 정성과 손맛만 있을뿐 가문 대대로 내려온 비법은 없었던 것이다. 메밀묵채와 노란 좁쌀이 박혀있는 조밥, 잘게 썬 김치와 파, 고추, 김, 무생채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멸치 다신 국물을 부어 묵사발이 완성된다. 겉모양으로 봐도 서울에서 맛봤던 묵 특유의 매끄러움과 윤기는 온데 간데 없고 투박하기만 하다.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었더니 "진짜 묵은 이런 맛이구나" 느낌이 온다. 푸짐한 양에 1인분에 5,000원, 값도 싸다. 그동안 팔도요리 행사에서 묵채만 선보였던 이 주방장은 묵사발 한 그릇을 비우고는 "올해 행사 때는 묵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조밥을 함께 내놓아야겠다"며 수첩에 적는다. (054)634-4614 ◆ 전남 담양 '덕인관'의 떡갈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떡갈비의 모양은 십중팔구 다진 고기를 뭉쳐놓은 동그랑땡을 떠올린다. 하지만 1963년 떡갈비 명가 덕인관을 열었던 장막래(76) 씨에게는 동그랑땡 모양의 떡갈비가 진짜 떡갈비가 아니다. 30여년간 장 씨가 만들어온 떡갈비(1인분 2만2,000원)는 고기를 다지는 대신 갈빗살에 칼집을 넣은 후, 칼로 저며 양념한 안창살과 갈빗살을 갈비뼈에 붙여 노릇하게 구은 것이다. 갈빗살을 남겨둔 덕분에 마지막에 갈비뼈를 뜯을 때는 살코기를 뜯어 먹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 고기 맛을 본 박종혁 조리사는 "우리는 갈비뼈에서 야무지게 살을 벗겨내서 쓰는데 뼈에 고기를 남겨두니 정말 갈비 뜯는 느낌이 나서 좋다"고 말했다. 간혹 드라마나 광고에서 임금님이 이가 없을 경우 떡갈비를 올릴 때는 고기를 다져서 썼다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대해 장막래 씨의 아들이자 덕인관 대표인 박규완 사장은 "좋은 고기라면 그 자체로 부드러워 다질 이유가 전혀 없다"고 잘라말한다. 덕인관은 한우 암소 1+등급 고기만 쓴다. 도축연령 제한이 없던 60~70년대에는 부드러운 송아지고기를 썼지만 이제 쓸 수 없게 되면서 마블링이 좋은 암소고기로 부드러운 맛을 낸다. 이 주방장은 "이번 행사에서는 갈비뼈에 갈빗살을 남겨 칼집을 내고 저민 고기를 덧붙여 착력도 높이고 갈비 뜯는 맛도 살리는 덕인관의 방식을 택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061)381-2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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