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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무역 의존 탈피가 韓 과제…CPTPP 가입이 현실적 해법"
국제 경제·마켓 2025.08.17 18:31:23“한국이 미국이나 중국 등 특정 국가의 시장이나 생산력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경제구조부터 구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역 다변화가 필수입니다. 특히 민간 기업의 역동성을 살릴 수 있도록 연구개발(R&D)과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합니다.” 세계적인 경제 석학 모리스 옵스펠드(사진)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 교수는 최근 화상으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 창간 65주년 특별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한국은 미국의 압박에 대한 노출 자체를 줄여야 한다”며 “하루아침에 미국과의 관계를 줄일 수는 없지만 궁극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미국에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무역 보복을 할 수도 없고, 안보 역시 미국에 기대고 있다”며 “역설적으로 미국이 한국 측에 중국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압박한다면 이 역시 불가능한 주문”이라고 짚었다. 옵스펠트 교수의 제언은 특정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구조를 개선하라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각각 약 1조 8697억 달러와 4조 262억 달러다. 한국이 일본의 절반 수준이지만 대미 흑자 규모는 한국(660억 달러)과 일본(685억 달러)이 거의 같다. 한국 경제의 미국 의존도가 일본보다 크다는 의미다. 한국의 중국 교역 의존도 역시 높다. 지난해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은 중국(19.5%)으로 미국(18.7%)과 함께 이들 국가에 대한 수출 비중이 매우 높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관세정책으로 한국 경제는 또다시 격변을 맞고 있다. 미국은 지난 30년간 이어온 자유무역정책이 미국에 전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했고 각국에 관세장벽을 쌓는 새로운 무역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해 한국은 어떤 경제정책을 세워야 할까. 한마디로 교역 다변화다. 옵스펠드 교수는 현실적인 해법으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제시했다. 그는 “이웃 나라나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의 관계를 더 깊게 파고들고, CPTPP 가입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한국은 무역 관계를 더욱 다양화하고 심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CP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일본, 캐나다는 물론 영국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규칙 기반의 자유무역 협정이다. 옵스펠드 교수가 선임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올 5월 보고서를 통해 유럽연합(EU)과 한국이 CPTPP 가입을 통해 미국 우선주의에 대응해 세계 자유무역 질서를 개선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현재의 CPTPP에 EU 27개국과 한국이 참여할 경우 전체 가입국의 GDP는 세계 GDP의 30%를 넘는다. 이 경우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아무리 거세도 규칙 기반의 자유무역 기조를 진전시킬 수 있다는 게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한국 경제가 민간 기업의 역동성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R&D와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옵스펠드 교수는 “미국의 민간 기업은 놀라울 정도로 역동적이며 국가의 힘과 자원을 총동원한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어느 곳도 이런 흐름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도 성공할 수 있는 틈새시장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R&D와 교육 시스템, 인적 자본 개발에 더 투자하는 것이 필수”라고 말했다. 기술 발전이나 R&D 영역은 자원 동원 능력이 큰 대국일수록 유리하지만 한국 역시 교육과 인적 자본, R&D 투자 확대를 통해 역동적인 경제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옵스펠드 교수는 “일각에서는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때문에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탄생한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미국의 역동적인 기업 덕분에 달러의 지위가 구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대학을 공격하고 연구비를 삭감하면서 미국에서 과학자들을 쫓아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탈하는 핵심 인재를 확보하는 것도 (한국에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옵스펠드 교수는 올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025 전미경제학회 당시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가치를 낮추기 위해 무역 상대국을 대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절상시키는 이른바 ‘마러라고 협약(Mar-a-Lago Accord)’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관세정책이 미국 제조업을 부흥시키는 데 한계를 보이면, 트럼프 행정부가 인위적 약달러로 미국의 수출 여건을 유리하게 조성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 6개월을 넘어선 현시점에서는 마러라고 협약의 추진 동력이 상실됐다고 봤다. 고강도 관세에도 이미 약달러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옵스펠드 교수는 “달러는 1월 이후 약 10% 정도 하락했고 현재 미국의 어떤 교역국도 지금 달러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고, 트럼프 행정부도 그런 접근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 같지 않다”며 “무역 협상이 여전히 진행되는 가운데 해외 각국을 상대로 추가적인 달러 평가절하에 합의하도록 이끄는 건 현실적인 목표가 아니라고 행정부도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관세를 통한 제조업 부활은 어려울 것으로 봤다. 옵스펠드 교수는 “미국 제조업 일자리를 대규모로 가져온다는 목표는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애초부터 미국 제조업의 감소는 무역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자동화의 결과물인 까닭이다. 중국조차 제조업 일자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감소했다. 옵스펠드 교수는 세수 확대나 러시아 휴전과 같은 정책 목표도 관세로 달성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관세 수입이 재정 확충에 기여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으로 발생할 재정 적자를 메울 수 없다”고 말했다. 옵스펠드 교수는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퇴임 이후 국제 협력과 다자주의를 존중하는 예전의 정책 기조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결국 달러의 지위는 약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많은 교역 상대국들이 미국의 정책 변동성과 강압적인 정책에 대응해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노출을 줄이려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며 “지금 경로가 이어진다면 어느 시점에 시장이 달러에서 이탈하는 시점이 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유로나 위안화, 엔화가 현재 달러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겠지만 다극적 통화 체제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모두가 참고하는 표준 글로벌 통화가 사라지면 세계경제의 효율성은 떨어진다”며 “결국 지금 우리는 더 많은 통화가 있는, 덜 번영한 세계로 가는 중일 수 있다”고 말했다. -
"트럼프, 국가를 사기업처럼 운영…대중 통제하는 中, 혁신과 양립 불가능"
국제 정치·사회 2025.08.10 22:04:02“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가를 사기업처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삼권분립이나 견제와 균형의 원칙 같은 건 존재하지 않고 있죠.”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는 서울경제신문 창간 65주년 특별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에 있어 매우 다른 모델을 갖고 있다”며 “자신의 사업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한다”고 평가했다. 민간에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사람만 요직에 임명하고 만약 그들이 실패하면 해고한다. 또 리더십 주변에 직언을 하는 사람이 드문데,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이 이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로서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로빈슨 교수는 “끔찍한(terrible) 경제정책”이라며 “경제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다양한 지정학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관세를 천연 자원과 부(wealth)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럽이 국방에 더 많은 돈을 쓰도록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순수하게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관세는 미국과 세계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세 부과와 철폐의 불확실성, 약 100년 만에 최고치로 오른 미국 관세 등이 이미 악영향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강력한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도 이어가고 있다. 로빈슨 교수는 “미국의 진짜 문제는 수십 년간 이어온 평균임금의 정체, 불평등, 정치 양극화”라며 “불법 이민자들이 이런 문제를 일으켰다는 증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 문제를 이슈화해 중요한 문제에서 대중의 주의를 분산시키려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이 인공지능(AI)·로봇·드론 등 첨단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대해 로빈슨 교수는 “중국의 압도적인 기술 발전 속도에도 저성장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그는 “전기차 등의 혁신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 “하지만 AI에 정부가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옛 소련 시스템을 연상시킨다”고 강조했다. 과거 소련이 무기·로켓·우주기술 등의 분야에 자원을 집중 투자해 앞서 나간 시기가 있었는데, 중국도 이와 비슷하다는 취지다. 그는 “중국은 AI가 권위주의와 경제성장을 조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이는 착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시진핑 국가주석하에서 개인 독재 체제가 강화되고 있고 중국공산당은 결국 사람들을 통제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며 “이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경제 목표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사회 분위기가 뒷받침돼야 경제가 지속 성장할 수 있는데, 사람들을 통제하는 공산당 통치 체제가 유지되는 한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폭발적 혁신으로 무장한 K자본주의 강력…美도 韓 필요, 관세 위기 돌파 가능”
국제 정치·사회 2025.08.10 22:03:56“한국은 폭발적인 혁신, 창의성의 나라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놓은 관세정책으로 전 세계가 혼란스럽지만 한국은 창의성으로 무장한 ‘K자본주의’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석학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는 최근 화상으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 창간 65주년 특별인터뷰에서 한국 경제가 눈부신 성장을 한 것은 ‘2단계 발전 과정’ 덕분이라며 이같이 평가했다. 로빈슨 교수는 “한국 경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두 가지 중요한 시기가 있었다”며 “첫 번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라고 운을 뗐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산업화와 수출, 산업 발전에 힘쓴 시기로 그 기간의 정책이 효과적이었다는 증거가 많다는 것이다. 로빈슨 교수는 사회 제도가 국가 번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공로로 지난해 10월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인 다론 아제모을루, 사이먼 존슨 등과 함께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특히 한국전쟁 등으로 폐허가 된 한국이 어떻게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뤄냈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만큼 한국 경제 발전사에 정통하다. 로빈슨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이 다양한 정책을 어떻게 시행했는지, 또 사람들이 일을 하도록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했다”며 “가령 박 전 대통령은 현대그룹이 조선업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는데 조선업에 진출하라고 지시했고 결국 지금과 같은 조선업 강국이 탄생했다. 정말 흥미로운 사례”라고 평가했다. 단적인 예로 한미 무역 협상 타결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역시 뿌리는 박 전 대통령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의 민주화라는 정치적 전환점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경제적 성취는 없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로빈슨 교수는 “1980년대 혁신 관련 데이터, 특허 출원 관련 수치 등을 보면 1980년대까지는 거의 제로 수준이었는데,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며 “이는 박 전 대통령 체제의 권위주의 시대에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1960~1970년대 국가 주도형 정책으로 경제 전반의 기반을 닦은 후 1980년대 후반 민주화 혁명 이후 창의적 경제로 전환해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게 그의 견해다. 로빈슨 교수는 “내가 오늘날 한국에서 목격하는 것은 놀라운 혁신과 창의성의 폭발”이라며 “한국을 보면 사회 전반에 걸쳐 혁신과 창의성이 넘쳐 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말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은 ‘재앙’이었다고 로빈슨 교수는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좋은 소식은 한국 사회가 그에 대해 저항했고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라며 “만약 계엄령이 이어졌다면 한국 경제의 미래 전망에 매우 나쁜 소식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몇 년째 이어지는 한국 경제 비관론에 대한 그의 견해를 물었다. 로빈슨 교수는 영국 출장길에 우연히 들렀다가 깊은 인상을 받은 한국 화장품 상점 사례를 소개하며 이 같은 비관론을 불식시켰다. 그는 “한국은 K팝과 같은 문화 현상을 통해 거대한 화장품 산업을 발전시켰다”며 “한국은 K팝을 기반으로 화장품 산업 분야에서 전 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게 바로 혁신이고 한국의 창의성으로 무장한 K자본주의”라며 “한국은 분명히 차세대 혁신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과 같은 최첨단 분야에서 한국이 뒤처져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는 “경제학 원칙 중 하나는 모두가 같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며 “AI와 같은 최첨단 분야에서 앞서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로빈슨 교수는 “한국의 데이터나 혁신, 연구개발(R&D) 지출, 특허 출원 등의 데이터를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혁신 측면에서 놀라운 수준”이라며 “한국의 성장 모델은 여전히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는 만큼 지금은 눈에 띄지 않지만 분명히 어떤 분야에서 앞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신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한국의 R&D 지출 비중은 5.0%로 이스라엘(6.3%)에 이어 회원국 중 2위를 기록했다. 3위는 스웨덴으로 3.6%, 4위는 3.4%인 미국이었다. 그는 한국이 일본보다 혁신성 측면에서 크게 앞서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로빈슨 교수는 “일본은 매우 성공적이고 번영하며 기능적인 사회”라며 “문화와 전통을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보존해왔고 그게 큰 성공이라 생각하지만 지난 20년간 정체된 느낌”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일본 경제를 들여다보면 혁신성 측면에서 한국과 같은 폭발적인 혁신은 보이지 않는다”며 “특허 출원 데이터만 비교해도 한국은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서 있다”고 말했다. 특허청에 따르면 한국의 국제특허출원(PCT) 출원은 지난해까지 27년 연속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일본이 전년 대비 1.2% 줄었지만 한국은 오히려 7.1% 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내면서도 긴 호흡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로빈슨 교수는 “한국과 미국은 70년 이상 굳건한 친구이자 동맹이었다”며 “한국도 미국을 필요로 하고 미국도 한국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한국이 인내심을 갖고 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러다 보면 분명히 기회가 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진하고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며 “북한이라는 매우 공격적이고 확장주의적인 독재 정권을 맞대고 있고 중국이라는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지만 어려운 상황을 딛고 지금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총평을 요청하자 로빈슨 교수는 “한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제 성공 사례 중 하나”라며 “모두가 한국이 어떻게 그런 성과를 달성했는지, 어떻게 사회를 그렇게 변모시켰는지 배우고 이해해야 한다. 만약 세계의 모든 가난한 국가가 한국이 지난 50~60년 동안 성취한 것을 이뤄낼 수 있다면 세상은 매우 다른 곳이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
장하준 교수 "주주환원 76%로 높이면…한국증시도 美처럼 ATM 전락할 것"
증권 국내증시 2025.08.07 17:36:21“우리나라가 중국한테 따라잡히게 생겼는데 주주 환원율을 76%로 올리겠다는 것은 주식시장을 미국처럼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기업과 경제 다 망합니다.” 장하준(사진) 런던대 경제학부 교수는 5일 화상으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 창간 65주년 특별 인터뷰에서 “미국은 지난 25년 동안 주주 환원율이 거의 100%로 기업이 투자할 돈이 없다”면서 “주식시장을 통해 들어온 돈보다 주주들에게 나간 돈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진보 진영에 속하면서 정부의 시장 개입을 주창한 케인스학파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다. 재벌과 사회의 대타협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은 25년간 그의 주제였다. 장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벌어지는 주주권 강화 논쟁에서 중간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주주가 과도하게 주주권을 행사한 것은 제지해야 하지만 주주의 몫에 선을 긋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까지 잃게 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는 보잉과 제너럴모터스(GM)의 몰락과 그로 인한 미국 제조업의 공백, 경제 전반의 부실을 대표적인 사례로 짚었다. 장 교수는 실리콘밸리 혁신 기업의 성장에도 주주권 강화보다는 창업자 보호의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글의 지주사 알파벳이나 페이스북·메타·우버 전부 차등의결권이 있다”면서 “애플도 고(故) 스티브 잡스가 경영할 때는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을 안 하고 그 돈으로 기술을 개발해 1위 기업이 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정부 경제정책의 한 축인 주주권 강화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주주권을 너무 확대하면 제조업이 무너진 미국 같은 꼴이 난다. 지금 제대로 투자하고 산업 정책을 만들지 않으면 중국에 먹힌다. 미국에 압박당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갑자기 왜 기업에서 돈을 빼 주주들이 나눠 쓰자는 얘기가 나오나. 일반적으로 주주권이 강화되면 기업이 장기 투자하기는 힘들다. 미국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전 세계 제조업의 60%를 차지했다. 1980년대 주주권이 강화된 후 지금은 16%밖에 안 된다. 산업 생태계가 파괴돼 생산성이 나지 않는다. 노동자 기술도 떨어지고 이들을 교육시키는 교육기관, 하청 업체, 연구 대학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망가졌다. 보잉과 GM이 예전에는 당할 자 없는 기업이었는데 10년 이상 엄청나게 자사주를 매입하면서 투자를 못 하니 망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지금 돈을 배당으로 풀 때가 아니다. -주주권을 강화하면서도 기업의 투자 여력을 해치지 않는 대안이 있는가. △정부가 선을 그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사주 매입이 그해 이윤의 10% 이상을 넘지 않게 하든지, 주주 환원율을 5년 평균 내서 50%를 넘지 않도록 못 박아야 한다. 그러면 주주권도 강화하면서 대주주가 전횡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주주권 강화는 재벌가의 전횡, 코리아 디스카운트, 부동산으로 투자금이 몰리는 것도 푸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주주권 강화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혁신 기업 초기 투자자가 위험을 감수한 만큼 주주권을 보호받아야 투자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주주 자본주의의 산지라고 하는 미국에서도 1982년까지는 자사주를 매입하면 경영진이 배임으로 소송당하기 쉽게 만들어놓았었다. 그것을 풀면서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올라가고 미국 기업이 거덜 난 것이다. 소위 혁신 기업들은 ‘1주 1표’식의 주주 자본주의를 하지 않는다. 지금도 (창업자가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차등의결권이 존재한다. 애플 역시 잡스가 경영할 때는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을 안 하고 그 돈으로 기술을 개발해 1위 기업이 됐다. 기술에 대한 비전이 없는 팀 쿡이 들어온 후 자사주 매입으로, 말하자면 주주들을 매수한 것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일본의 주주권 강화에 주목하며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일본의 주주권 강화가 제조업 약화로 이어지리라 보는가. △최근의 주주들은 법적으로는 회사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자본 이외) 기업에 대한 기여는 하나도 없다. 영국도 주주들이 1년 안에 돈이 안 나오면 팔고 떠난다. 1960~1970년대만 해도 평균 5년을 보유했지만 주주들이 점점 단기화됐다. 미국 같은 경우는 지난 25년 동안 주식시장이 기업에서 돈을 빼가는 메커니즘이 됐다. 얼핏 생각하면 주주들이 투자를 많이 하면 기업은 투자금이 많아지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우리나라의 세제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다. 총조세를 명목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조세부담률은 우리나라가 30%이고 OECD 평균은 34%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나라의 경우 미국 빼고는 35~45% 수준이 된다. 저는 한국이 복지 지출을 늘리기 위해 조세부담률이 더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조세 부담의 가성비다. 예를 들어 파라과이는 법인세율이 10%이고 독일은 30%다. 파라과이는 세금을 적게 낼지 모르지만 치안도 안 좋고 노동자 교육도 돼 있지 않고 인프라가 안 좋으니 비싼 돈을 내고 독일에 가서 사업하는 것이다. 덴마크는 조세부담률이 45%이고 부가가치세도 25%인데 국민의 90%가 지금 내는 세금에 만족한다고 한다. 좋은 복지 제도로 보장이 되고 안심하고 살 수 있으니 세금을 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법인세·배당소득세·상속세 등을 통해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해 과세해야 한다는 방향인데. △기본적으로 부자들이 더 많이 내는 누진세 제도는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부자만 세금을 많이 내서는 조세를 올릴 수 없다. 또 갑자기 너무 올리면 부작용이 있다. 지금 하듯 배당소득·양도소득·법인세를 갖고 세금도 올리고 지배구조도 개선할 수는 없다. 법인세는 기업이 정부가 제공하는 교육·인프라·외교 등 공공서비스에 대해 돈을 내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돈을 내는데 서비스가 안 좋다고 하면 세율을 낮추는 게 좋다. -한국과 미국 간 타결된 관세 협상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관세 협상이라는 게 얼마나 구속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있는데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그것을 완전히 무시했다. FTA는 각국 의회가 비준을 하는 준헌법적인 것이지만 관세는 그냥 양국 대표의 합의일 뿐이다. 이미 인플레이션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있다. 물가가 치솟으면 미국인들이 물가와 트럼프(의 관세정책)를 바꿀 수 있다. 내년 11월이 중간선거인데 올겨울부터 인플레이션이 오르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공화당을 찍겠는가. 그러면 관세정책은 원점에서 검토할 수 있다.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든 아니면 공화당에서 온건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이번 협상은 무의미해지고 상식이 있는 정부라면 재협상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세부 협상을 할 때 우리 이익에 맞는 것은 하고 아닌 것은 (인플레이션이 본격화 할) 내년 여름까지는 미뤄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선 산업도 한화그룹은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것이니 빠르게 진행하면 되지만 (제철소를 짓는 현대자동차그룹처럼) 다른 경우는 (한국이 투자하기 위해) 부지 설정하고 계약을 맺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다. 지금은 세계 각국이 놀라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 바뀔지 모르고 이행할 필요도 없는 것들이다. 미국 경제가 굉장히 약점이 있기 때문에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관세 협상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 역할을 하면서, 국가 주도의 산업 정책을 강화할 계기가 됐다. 이재명 정부의 산업 정책을 어떻게 보는가. △IMF 외환위기 이후 25년간 우리나라 산업 정책이 약화됐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부활할 수 있다. 미국이 압박해서 우리 기업에 돈을 뜯어내고 중국이 무섭게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기술 혁신 중심의 산업 정책을 펼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국에서는 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우고 저임금 국가나 미국으로 기업을 옮길 것은 옮기는 경제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 "돈 안 쓰는 대학, 연구자 해외로 내몰아…잘할 수 있는 분야 집중 투자를" ['인재 유출' 해법 제시] 의대열풍 국가 발전에 도움 안돼 이공계 전폭적 처우 개선 나서고 K컬처, 플랫폼 경제로 발전 모색 사회적 대타협…복지국가 전환을 경제학자로 명성이 높고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장하준 런던대 교수는 학교를 졸업한 후 국내 대학에 적을 두지 않았다. 장 교수뿐 아니라 많은 인재가 한국을 떠나는 이유로 그는 대학이 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장 교수는 5일 진행된 특별 인터뷰에서 “국내 대학이 오랜 전통과 자금을 보유한 미국의 대학과 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해야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있다”면서 “코닥 본사가 있던 미국의 로체스터대는 광학 분야만 집중해서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고 소개했다. 의대 쏠림이 의료 산업 발전으로 이어져 국가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청사진에도 그는 비판적이었다. 장 교수는 “한국의 인재들이 모두 의대를 희망하는 것은 과거 이공학 계열로 진학 시 제공하던 병역 특례 등의 혜택이 줄고 의사에게 부가 몰렸기 때문”이라며 “이공계 인재가 평생직장을 가질 수 있는 인센티브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어떤 나라도 의료 산업은 다른 산업보다 규모가 미미하다”면서 “의료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켜도 자동차나 반도체 같은 제조업을 압도할 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영국을 기반으로 각국을 방문하는 그는 누구보다 K컬처의 열풍을 체감하고 있다. 장 교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부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BTS의 빌보드 1위까지 영화·드라마·K팝 등을 통해 이미 전 세계에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많이 퍼져 있다”고 놀라워했다. K콘텐츠 제작에 머물지 말고 플랫폼까지 영향력을 넓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넷플릭스가 K콘텐츠에 대한 수익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이 ‘맨땅에 헤딩’하는 자세로 플랫폼에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장 교수는 “문화 생태계를 구축하면 한국의 이미지 제고로 이어져 외교뿐만 아니라 기업이 해외에서 사업을 할 때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시에 장 교수는 한국의 ‘어두운 면’ 또한 돌아보라고 비판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노인 빈곤율 1위, 남녀 임금격차 1위, 출생률 세계 최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는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멋진 나라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비참한 국가”라며 “빛과 그늘이 같은 역사의 뿌리에서 나온 만큼 왜 이런 나라가 됐나 성찰해야 한다”고 짚었다. 장 교수가 제안하는 궁극적인 해법은 바로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이다.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른 만큼 단순히 성장률이라는 숫자보다 성장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복지를 확대하면 성장률이 낮아진다는 1970년대식 담론에서 이제 벗어나야 할 때”라며 “성장을 통해 국민들이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삶의 질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집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기업 오너가 경영권을 승계하고 대신 복지 재원을 사회에 기여하는 ‘발렌베리식 해법’을 제언해왔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과거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엄청난 보조금을 받았고 정부가 수입을 금지하면서 키워왔다”고 언급했다. 그는 “6대째 경영권을 유지하는 발렌베리 가문은 총수 3명이 가진 자산이 500억~600억 원이고 기업 이윤의 85%를 재단을 통해 인재 양성과 과학 발전 등에 쓴다”면서 “불행하게도 우리는 소위 진보라고 하는 분들이 재벌 가문을 부수겠다고 하고 반대쪽에서는 경영권을 지키려고 꼼수를 쓰고 있다”고 꼬집었다. 장 교수는 “온 국민이 힘을 합쳐 만든 기업인 만큼 ‘4세에는 안 물려주겠다’ 이런 것보다는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He is… △1963년 서울 △1982년 서울대 경제학과 △1991년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 △1990년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전임강사 △ 2005년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2022년 런던대 경제학과 연구 전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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