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재정적자가 연일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재정적자로 미국 연방정부의 신용등급마저 강등되는 상황이다. 올해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2300조 원, 그 중 이자비용이 900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6%를 넘는 규모로 사실상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쉽지 않다.
일본도 심상치 않다. 지난해 국가 예산 107조 6000억 엔 중 신규 국채 발행으로 조달하는 규모가 34.3%인 6조 9000억 엔에 이른다. 그 가운데 국채 변제 비율은 22.6%나 된다. 즉 빚 내서 빚 갚고 이자 지불하는 데 24조 3000억 엔이나 쓴다. 오랜 기간 과도한 국가채무로 이러한 기형적 예산 구조가 만들어져 정부가 경제 활력 제고에 나설 여지가 거의 없다.
한국 역시 상황이 심각하다. 관리재정수지는 지난해 117조 원 적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올해도 8월 기준 66조 원 적자다. 국가채무는 1110조 원이나 된다. 살림이 적자가 나면 빚을 내기 마련인데 2018년 15조 원이던 적자국채 발행 규모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2020년 102조 8000억 원까지 치솟았다. 지난해에도 86조 2000억 원에 달했다. 올해 한도는 45조 8000억 원으로 올 상반기까지 34조 원의 적자국채가 이미 발행됐다.
이와 같이 주요국이나 한국이나 타성적으로 손쉬운 국채 발행을 통해 재정적자를 메워왔다. 사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세수 펑크가 종잡을 수 없고 고금리가 지속되는 여건 속에서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형국이다. 그런데도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적자국채도 더 이상 늘리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평가할 만하다. 미래 세대에 더 이상 부담을 떠넘기지 않겠다는 극히 정상적인 모습이 이제야 실현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두 가지 유념해야 할 대목이 있다. 하나는 투자가 필요한 분야의 예산 삭감, 복지 축소, 경기 둔화 등으로 인한 사회적 고통을 해결해야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재정적자를 효율적으로 감축하는 과정에서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하는 점이다.
사회적 고통을 해결하려면 사회적 합의, 현명한 결단, 뼈를 깎는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정치 논리를 넘어 정치권과 경제계 등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또 재정적자 발생이 불가피하다면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교훈 삼아 적자국채 발행에 의존하는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급적 미래 세대에 그 부담을 전가하지 않는다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 즉 재정준칙의 확립을 입법화하는 일이다.
운용의 묘는 바로 국가채무 구조를 어떻게 짜느냐의 문제다. 국가채무를 건전화하면서 장기적으로 부채 구조를 이자 부담이 덜한 방향으로 만들어야 한다. 현재의 고금리 상황에서 부채 운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향후 5년, 10년 및 그 후의 재정 상황이 바뀔 것이다.
단기국채 위주로 부채 구조를 바꾼다면 단기부채 상환 압박에 시달릴 것이고 금리가 4%가 넘는 장기국채 발행을 늘린다면 수십 년간 고금리의 이자비용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부채를 줄이면서 장기적으로 이자비용도 낮추는 방안이 필요하다.
가령 한국 채권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면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추진뿐만 아니라 이에 걸맞은 국제적 수준의 행정 간소화를 통해 외국인투자가들의 원화 채권시장에 대한 편의성을 제고해야 한다. 또 일본 및 호주와 같이 국채 선물의 해외 거래 자유화 등 국제 금융시장의 접근성도 높여야 한다.
더불어 국내 개인들의 자금이 채권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채권시장 및 예금 상품에 대한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 가계저축률 증대를 위해 부동산 시장의 건전한 구조조정 등 지속적인 디레버리징 정책도 추진해야 한다. 수출 기업들이 해외 법인 달러 자금을 배당 형식으로 국내로 들여올 경우 배당소득세 분할 납부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역시 환율 및 단기자금시장 안정에 도움이 된다.
투자가의 격언 중에 수영장에 물이 빠졌을 때야 누가 옷을 입고 있지 않은지 드러난다고 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로 어려운 시대인 지금, 정부 당국의 진정한 실력이 드러날 것이다. 정부의 현명한 재정 운용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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