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가 되니 두렵고 떨리게 했던 것들에 대한 겁이 조금 없어졌다. 더 이상 누가 나를 욕하거나 위협할 때 파르르 떠는 새가슴이 아니었다. “왜, 뭐!” 하며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할 말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면 더 밟아대는구나. 한 번이라도 큰소리쳐야 건드리지 않는구나.’ 혹독한 지난 시간 덕택에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십 대가 되니 나와 다른 시선이나 기준에 대해서도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 하고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옳다’거나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누가 별난 짓을 해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노래에도 관객의 평이 모두 다르듯 정답이랄 게 없었다. 그러니 남 신경 쓰지 않고 내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살기로 했다. (양희은, ‘그러라 그래, 2021년 김영사 펴냄)
가수 양희은의 에세이는 제목만 봐도 웃음이 난다. 까랑까랑한 특유의 음색이 다섯 자 제목에서 그대로 들린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사건 앞에 진저리 치며 “왜 저래?” “미쳤나봐!” 부글부글 끓던 날이 있었다. 그런 시기를 지나면 “그러라 그래” “그럴 수 있어” 하고 세상만사 합당한 존재 이유와 사연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때가 결국은 오는 걸까.
과거 양희은이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음반사 사장이 ‘양희은 마지막 앨범’ ‘시한부 인생’ 등의 광고를 걸고 편집앨범을 내 뒤통수를 친 적이 있다고 한다. 돈까지 떼먹은 그이에게 훗날 양희은은 그때 왜 그랬냐고 꽥꽥 소리 지르면서도, 그가 병들었을 때 끝까지 간병하고 돌보았다는 일화가 있다. 인생이 큰 강처럼 흐르고 흐르면 고까운 사람도, 다신 안 보리라 결심한 이도 다 품을 수 있을까. “그러라 그래”는 타인과 세계에 대한 체념이나 절망이 아니다. 그 누구에게도 무슨 일에도 유난 떨지 않고 끝내 나로 살아내겠다는 인생 고수의 강력한 한 방이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