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8일 국회 연설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기존 강경 어조는 누그러졌지만 “힘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겠다” “미국 등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 등의 과격한 언어를 포함하며 북한을 강하게 압박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이후 24년 만에 한국 국회 단상에 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당신(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할아버지가 그리던 낙원이 아니다”라며 “그 누구도 가서는 안 되는 지옥”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당신이 획득하고 있는 무기는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며 “어두운 길로 향하는 한걸음이 당신이 직면할 위협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의 미국 정부는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도발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북한은 미국을 유약함으로 해석해왔다”며 “하지만 지금 우리 정부는 매우 다른 행정부다. (계속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 치명적인 오산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양국과 모든 문명국가를 대신해 말한다”며 “우리를 과소평가하지 말라. 우리를 시험하지도 말라”고 역설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힘을 통한 평화를 지키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이제는 힘의 시대”라며 “힘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강력한 방위력, 압도적 군사력만이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대화를 통한 평화의 문도 열어놓았다. 그는 “당신이 지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을 제시할 준비가 돼 있다”며 “출발점은 탄도미사일 개발을 멈추고 도발을 중단하며 안전하고 검증 가능한 총체적인 비핵화”라고 밝혔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핵 악몽이 가고 아름다운 평화의 약속이 오는 날을 꿈꾼다”고 말했다.
이날 연설을 두고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주파수가 비슷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관련 발언보다는 수위가 누그러졌다”고 평가하며 “강한 압박을 통한 대화와 평화를 강조한 현 정부와 코드가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중 ‘평화’라는 단어를 7번이나 쓰기도 했다.
국회 연설에서 무역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점도 눈길을 끌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 방한 직전에 외교부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돌발 발언을 자주 하는 특성상 한미 정상회담 자리에서는 자제하더라도 단상에 홀로 서는 국회에서 한국과 날을 세우는 발언을 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며 “그러나 큰 돌출 발언은 없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대조법’을 극명하게 살리기도 했다. 연설 초반부에는 공산주의가 아닌 자유를 택한 한국 경제·사회 발전상을 구체적인 수치까지 언급하며 강조했다. 그는 “한국 경제 규모는 1960년과 비교해 350배 커졌고 교역은 1,900배 증가했다. 평균수명도 53세에서 이제 82세가 됐다”며 “한국의 작가들은 연간 4만권의 책을 저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외환위기에 처했을 때는 수백 명씩 줄을 지어 가장 값나가는 물건들을 내놓으며 자녀들의 더 나은 미래를 담보하고자 했다”고 치켜세웠다.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아홉 살 소년이 조부가 반역죄로 고발당했다는 이유로 10년간 수감생활을 하고 부모들은 자녀들이 강제노역에서 제외되기를 바라며 교사에게 촌지를 건넨다”고 구체적 사례를 들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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