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조
유상조 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연재 중
‘마루치 아라치’ 인문학
2개의 칼럼 #행정
  • ‘마루치 아라치’ 인문학
    대입시험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일명 수능에 이르렀다. 가끔 재미삼아 국어와 영어 수능문제를 풀어보곤 한다. 학력고사 세대에겐 낯선 문제 유형이어서 답을 틀리기는 하지만 솔직히 못풀 정도로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단 시간이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지문의 양을 보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문을 다시 읽는 순간 찍을 수밖에 없는 문제가 빤히 기다리고 있다. 결국 아는 문제를 틀리도록 만드는 아주 저질의 문제구조다. 속독 능력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시간이 충분하면 충분히 맞출 수 있는 문제를 내놓고 시간으로 공격해 들어온다. 이것을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문제라고 저렇게 버젓이 낸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이다. 마루치 아라치를 추억하며 살아가는 학력고사 세대야 그렇다 치더라도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과 로봇과 경쟁하며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이따위 문제로 줄을 세운다. 공자께서 “가르치지 않은 백성을 전쟁터로 보내는 것은 그들을 내다 버리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5지 선다형 문제를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기계적으로 풀도록 가르치고는 혁신적 생각으로 도전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는 험한 세상속으로 뛰어들도록 하고 있으니 이것이 아이들을 내다 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우선 확인해봐야 할 사항이 있다. 너무 미안한 이야기지만 일단 선생님들도 공개된 장소에서 아이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풀어 보자. 만약 자기도 시간 내에 풀 수 없는 문제를 내 놓고 아이들보고 풀라고 한 것이라면 세상에 이보다 더 뻔뻔스러운 짓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보여주자. 시간내에 풀 수 있는 사람이 너희들을 가르쳤다는 것을. 그게 증명되어야 시험이 최소한의 정당성을 획득하지 않겠는가. 참고로 미국직무훈련기간 개인적으로 영어를 가르쳐 주던 미국인 친구도 시간 내에 풀어내지 못했다. 다음으로 대한의 교육은 끔찍할 정도로 망가졌다는 것을 인정하자. 슈바이처 박사의 전기를 읽고 의사가 되는 꿈을 갔게된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12년의 교육을 받으면 어떻게 변해 있을까? 꿈이 의사인 고등학생에게 슈바이처 박사를 읽었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그 인간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는 듯 어이없이 쳐다보지 않을까? 대한의 교육은 교육이랍시고 아이들의 순수함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이런 아이들이 의대에 진학을 하니 의대생들이 이미 기성세대 의사보다 더 기득권에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수업을 거부하고 심지어 환자를 거부까지 한다. 그야말로 똘똘 잘도 뭉친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어른들이 정신차려야 한다. 한 가지 제안을 해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2026학년도 수능을 위해 수능 출제·검토위원 500여명, 진행·급식·보안 등 행정 업무 담당 230여명 등 총 730여명이 40일간 합숙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수 십년간 기막힌(?) 문제를 내느라고 쏟아부은 에너지의 반이라도 우리 교육의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았다면 과연 이 문제가 지금 이토록 곪아 썩어 문드러졌겠는가. 문제가 있음에도 문제를 해결하려하지 않고 옛날 방식에서 허우적대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말 이대로 침몰하는 대한민국호를 그대로 두고 볼 작정인가?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오로지 교육시스템 개혁에 몰입하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감금할 열정이 있는 교육 전문가 500명을 모아 수능 출제·검토위원처럼 합숙 생활을 해보자.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가능하지만 어려운 문제다. 우리가 아직 찾지 못했을 뿐 해결 방안은 분명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늦기 전에 찾아내야 한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엄중한 책무다. 단테의 말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자신이 옛 사람들의 수고로 부유해진 이상, 자신도 후손을 위하여 수고함으로써 후손들에게도 그 덕분에 부유해질 만한 것들을 남겨야 한다. 사회 문제에 관한 이론을 습득한 사람으로서 국가에 어떤 이바지를 하고자 고심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자기 본분을 멀리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 힘든 여건에서도 진정한 스승으로 그리고 진정한 의료인으로 살고 계시는 분들에게 더없는 존경심을 보낸다. 혹시라도 위의 글로 마음에 상처받지 않으셨길 바란다.
    2025.11.20 15:35:58
    수능 단상(斷想)
  • ‘마루치 아라치’ 인문학
    마루치 아라치는 초등학교 1학년 때인 1977년에 개봉한 대한민국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정식 영화제목은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로 동시대를 살아온 분들이라면 줄거리의 대강을 기억할 것이다. 주제곡 ‘달려라 마루치, 날아라 아라치’는 누군가 선창만 해주면 어렵지않게 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당시 관객수 16만명 이상을 기록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흥행에 있어 역사적 영화였다. 당시 부모님과 동행하지 않고 극장에서 벗들과 본 최초의 만화 영화였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기억될만한 영화였다. 당시 벗들은 영화관에서 마루치, 아라치와 같은 편이 되어 파란해골단과 용감하게 싸웠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한참동안 마루치, 아라치의 발차기를 흉내내며 지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인터넷에 마루치 아라치를 검색해 보았고 다행스럽게도 50년 가까이 지난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다시 만난 마루치 아라치는 마치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가 알프레도가 마지막으로 남겨 준 필름(검열에서 삭제된 키스 장면들을 모아놓은 필름)을 다시 보는듯 가슴을 울렸다. 멀리 떨어져 살아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그리운 벗을 준비 없이 갑작스레 만난 듯 뭔가 어색했지만 한 번 꼬옥 안아주고 싶은 영화였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마루치 아라치의 줄거리를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물리학자 장동환 박사는 동해 수중 공원에서 열리는 핵물리학자회의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결의를 하고자 한다. 이에 반해 파란해골단장은 장동환 박사를 납치해 광속으로 날아가는 우주선을 만들어 지구, 더 나아가 우주의 지배자가 되고자 한다. 물론 마루치 아라치가 수많은 역경을 극복한 후 파란해골단장을 쳐부수고 장동환 박사를 구출한다.’ 거의 정지화면 같은 장면들은 현대 애니메이션의 시각으로 보면 유치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모여 중간중간 끊어질듯 이어지는 이야기들로 신기하게 재탄생한다. 지금보아도 시대를 앞서간 장면, 너무나도 인간적인 장면, 한껏 섬뜩한 장면, 은근 안타까운 장면, 웃음을 참기 어려운 장면들이 어울어져 만화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들이 되어 한 편의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잠시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들어가 보자. 양 사범과 장 선생이 마루치 아라치가 살고 있는 동굴에 들어와 이름을 묻는 장면에서 마루치는 선생이 순수 우리말도 모르냐고 핀잔을 주면서, 마루치의 마루는 산마루, 등마루 할 때처럼 가장 높은 꼭대기를 뜻하는 것이고, 아라치의 아라는 알, 아래, 아랑 등 아름다운 소녀를 뜻한다고 또박또박 말해준다. 1970년대의 현실에서 그런 태도로 어른들이나 스승님들에게 말했다면 상당히 강한 물리적 타격을 감수해야 했다. 우리 모두 하고 싶었던 말이지만 억눌린 현실에서 입도 뻥끗하기 어려웠던 말을 마루치가 대신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봐도 속이 확 뚫리는듯 시원하다. 마루치 아라치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어깨가 쳐진 50대 중반의 아저씨, 아줌마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 뭐든 다 할 수 있었던 씩씩했던 초등학교 어린이로 잠시나마 돌아가는 기적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연재를 시작한 ‘마루치 아라치 인문학’이 애니메이션처럼 으뜸이 된다면 좋겠고 아름다운 글이 된다면 좋겠다. 욕심을 좀더 부려본다면 몇십 년이 흐른 뒤 다시 읽히는 글이 되어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면서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바라본다. 초등학교 1학년 마루치처럼 발차기를 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마루치 아라치 인문학을 시작해본다.
    2025.11.05 15:37:24
    ‘마루치 아라치’다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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