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
연재 중
K- 행정, 혁신의 길을 묻다
3개의 칼럼 #행정
  • K- 행정, 혁신의 길을 묻다
    지역 소멸이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서 광주와 전남이 생존을 위한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는 대의명분(大義名分)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지역의 경쟁력을 높여 시·도민 모두가 잘 사는 터전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절박한 염원이며, 필자 역시 그 방향성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무엇을(What)’ 하느냐만큼 중요한 것이 ‘어떻게(How)’ 하느냐이며, 더 나아가 ‘왜(Why)’에 대한 냉철한 실증이 전제되어야 한다. 최근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가 불쑥 튀어나온 방식은 심히 우려스럽다. 시·도지사의 전격적인 선언과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추진 과정은 마치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위로부터의 개혁’을 답습하는 듯하다. 이는 ‘지방 시대’라는 정부 기조에 편승하여 임기 내 가시적 성과를 내보이려는 단체장들의 조급함이 빚어낸 ‘정치공학적 계산’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행정통합은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 아니다. 지역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흔드는 고도의 화학적 결합이자, 주민의 삶을 재구성하는 거대한 실험이다. 통합 찬성론자들은 앵무새처럼 ‘해외 선진 사례’를 거론하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 프랑스의 레지옹 개편이나 일본의 오사카도 구상을 보면 우리도 통합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우리가 수행한 팩트체크 결과, 그 실상은 찬성론자들의 주장과 사뭇 다르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첫째, ‘통합하면 효율적’이라는 신화는 깨졌다. 프랑스는 2016년 22개 레지옹을 13개로 통폐합하며 행정 비용 절감을 자신했다. 그러나 프랑스 감사원의 보고서는 통합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임금과 복지 혜택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맞춰지는 ‘상향 평준화’가 발생해 오히려 인건비 등 재정 부담이 영구적으로 증가했음을 지적했다. 규모의 경제를 기대했다가 ‘규모의 비경제’라는 역풍을 맞은 셈이다. 광주와 전남이 통합할 경우, 직급 조정과 처우 개선 비용에 대한 치밀한 추계 없이 막연히 ‘예산이 절감될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기만에 가깝다. 둘째, ‘행정 통합이 곧 경제 성장’이라는 등식도 성립하지 않는다. 일본 오사카유신회는 ‘오사카도 구상’을 통해 이중행정을 없애면 오사카가 도쿄와 맞먹는 경제 도시로 부활할 것이라 선전했다. 하지만 데이터는 오사카의 경제적 침체가 행정 구역의 문제가 아니라 인구 고령화와 산업 구조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2045년 오사카의 고령화율은 36%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간판을 ‘특별자치도’로 바꿔 단다고 해서 떠나는 청년이 돌아오고 기업이 저절로 생겨나지는 않는다. 셋째, 주민 동의 없는 통합은 필패한다. 일본 오사카 주민들은 두 차례(2015년, 2020년)의 주민투표에서 통합안을 부결시켰다. 행정 서비스가 거대 광역 정부로 이관될 경우, 내 집 앞의 쓰레기 수거, 돌봄 서비스와 같은 풀뿌리 복지가 소홀해질 것을 우려한 ‘주민의 승리’였다. 독일의 베를린-브란덴부르크 통합 역시 1996년 주민투표에서 브란덴부르크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거대 도시 베를린에 흡수되어 주변부로 전락할 것이라는 공포, 즉 ‘흡수 통합’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한 결과다. 이는 광주라는 대도시와 전남이라는 농어촌이 결합할 때 전남 도민들이 느낄 소외감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지금 광주와 전남에 필요한 것은 깜짝쇼와 같은 로드맵 발표가 아니다. 프랑스의 실패와 오사카의 거부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통합의 득과 실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통합 시 발생할 천문학적인 청사 건립 비용, 공무원 조직 개편에 따른 갈등 비용, 그리고 농어촌 소외를 막을 구체적인 재정적 안전장치(Safety Net)를 주민 앞에 내놓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진정한 지역 경쟁력은 단체장의 치적 쌓기용 ‘속도전’에서 나오지 않는다. 영국이 보여준 것처럼 재정 권한 없는 무늬만 통합은 중앙정부의 통제만 강화할 뿐이다. 정부의 지원 의지가 확고하다면 더더욱 서두를 이유가 없다. 지금이라도 일방통행을 멈추고, ‘민관정(민·관·정) 통합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바닥에서부터 의견을 모아가는 상향식(Bottom-up) 절차를 밟아야 한다. 주민의 교감 없는 통합은 ‘미완의 봉합’에 그칠 뿐이며, 그로 인한 혼란과 비용은 고스란히 지역민의 몫이 될 것이다. 시·도지사는 이제 ‘환상’을 걷어내고 주민과 함께 ‘실증’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2026.01.02 17:45:01
    광주·전남 행정통합, ‘환상’ 걷고 ‘실증’의 길 가야
  • K- 행정, 혁신의 길을 묻다
    광장은 뜨겁다. 주말마다 도심은 서로 다른 깃발과 구호를 든 인파로 뒤덮인다. 이것은 단순한 인상이 아니다. 최근 수년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등의 국제 조사에서 한국은 빈부 격차와 이념 등 주요 갈등 항목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갈등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국제적인 통계로 입증된 셈이다. 표면적으로 한국 사회는 의사 표현이 넘쳐나는 듯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소통’은 실종됐다. 광장에는 자기주장만 쏟아내는 거대한 ‘목소리’들만 공명할 뿐, 상대를 이해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숙의(Deliberation)’는 자취를 감췄다. 지금 우리 사회의 공공정책 결정 과정은 합리적 토론의 장이 아니라, ‘진영 논리’의 전장(戰場)으로 변질되었다. 정책의 타당성이나 사실(Fact) 관계보다 “누가 제안했는가”가 찬반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이 된다. 정부는 반대편을 설득할 생각 없이 일방통행하고, 야당은 대안 없는 반대로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 내가 지지하는 진영의 정책은 선(善)이고, 상대방은 타도해야 할 악(惡)으로 규정되는 이 적대적 공생 관계 속에서 행정의 본질은 길을 잃었다. 이러한 혼란을 잠재우고 갈등을 넘어설 해법은 결국 ‘공공가치(Public Value)’의 회복에 있다. 공공가치란 정부가 일방적으로 던져주는 시혜가 아니라, 시민과 정부가 함께 규정하고 합의해 나가는 사회적 가치의 총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진영이 이기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우리 공동체를 위한 공공가치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물론 모든 사안을 숙의할 수는 없다. 재난 대응이나 긴급한 경제 위기 앞에서는 리더의 신속한 결단이 곧 공공가치다. 하지만 연금 개혁, 에너지 정책, 의료 문제 등 사회 구조를 바꾸는 거대한 난제들은 속도전으로 풀 수 없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절차적 정의’와 ‘공정성(Fairness)’이다. 이는 단순히 시간을 끄는 요식행위가 아니라, 공공가치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기둥이다. 국민은 결과가 다소 불만족스러워도 그 결정에 이르는 과정이 공정하고 자신의 목소리가 경청되었다고 느낄 때 결과를 수용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치권의 대응은 공공가치 실현과는 거리가 멀다. 갈등이 터지면 정부는 사후 약방문식으로 수습하거나 형식적인 위원회 뒤에 숨고, 야당은 이를 정쟁의 도구로만 삼는다. 이는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훼손하는 공범 행위다. 숙의를 생략한 채 효율성만을 앞세운 정책은 당장은 빨라 보일지 몰라도, 결국 거센 저항에 부딪혀 사회적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효율의 역설’에 빠지게 된다. 이제 행정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단순한 법 집행자를 넘어, 공공가치를 창출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정책 설계 단계부터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키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반대파를 국정 운영의 걸림돌이 아닌, 정책의 사각지대를 비춰주고 공공가치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숙의는 시끄럽고, 지루하며,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때로는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치열하게 토론하고 조금씩 양보하며 합의의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공가치 창출이다. 행정은 정답을 강요하는 권력이 아니라,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관리하며 공공가치를 구현하는 서비스여야 한다. 정부와 야당 모두 진영의 논리를 넘어, 공공가치 중심의 숙의의 장으로 복귀해야 한다. 그것만이 분열된 광장의 소음을 화합의 선율로 바꾸는 유일한 길이다.
    2025.12.19 12:04:55
    ‘갈등 공화국’의 해법, 진영 논리 넘어 ‘공공가치’로 가자
  • K- 행정, 혁신의 길을 묻다
    이재명 정부가 지난 13일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안)’을 발표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비전으로 제시하며 123대 국정과제에는 개혁, 혁신성장과 더불어 ‘국민통합’을 핵심 축으로 포함시켰다. 이는 분열된 사회를 치유하고 국가적 에너지를 결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러나 제시된 국정과제들의 실현 가능성과 함께 과연 이러한 방식이 진정한 국민통합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냉철한 검토가 필요하다. 정부는 개헌을 1호 과제로 설정하고 검찰청 폐지 등 권력기관의 근본적 재편을 예고했다. 동시에 정치적 양극화 해소를 위해 ‘여야정 상설협의체’ 가동 및 ‘협치 내각’ 구성 등 국민통합을 위한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는 현실적으로 심각한 모순을 내포한다. 개헌과 검찰 개혁은 고도의 정치적 합의가 필수적이나, 이는 그 자체로 극심한 진영 갈등을 유발하는 휘발성 강한 의제이다.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면서 동시에 반대 진영과의 협치를 강조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반대 진영을 설득하고 포용할 구체적인 협치 로드맵이나 권한 이양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혁 추진은 오히려 통합을 저해하는 역설을 낳을 위험이 크다. 통합 관련 기구들은 구호성 조직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경제 분야에서는 인공지능(AI)·바이오 중심의 미래 산업 육성, ‘코스피 5000’ 달성, 100조 원 규모 국민성장펀드 조성 등을 약속했다. 혁신 성장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으나 구체성은 부족하다. 가장 큰 문제는 5년간 210조 원에 달하는 추가 재원 조달 방안이다. 정부는 ‘세입 확충과 지출 효율화’라는 원론적 답변에 그쳤다. 구체적인 로드맵 없이 대규모 투자와 복지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재정 건전성을 위협한다. 증세나 강력한 세출 구조조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는 결국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를 통한 통합을 강조하며 이른바 ‘노란봉투법’ 추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명문화 등을 제시했다. 이는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수 있으나 ‘선택적 통합’에 그칠 위험이 있다. 친노동 정책은 경영계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이는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의 뇌관이 될 수 있다. 경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기업 부담 가중은 투자와 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진정한 국민통합은 특정 계층의 이익 강화가 아닌 이해당사자 간의 고통 분담과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의 한계가 명확하다.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은 자주국방을 목표로 하지만 성급하게 추진할 경우 안보 불안 및 국론 분열을 초래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행정수도 완성 등 균형발전 정책은 지역주의 완화를 통한 통합에 기여할 수 있으나 수도권 역차별 논란 등 또 다른 갈등을 관리해야 하는 난제가 있다. 요컨대 이재명 정부의 123대 국정과제는 국가 대전환과 국민통합을 향한 담대한 계획으로 개혁과 통합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방향성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무엇을(What)’은 명확하나 ‘어떻게(How)’는 불분명하다는 한계를 노출했다. 특히 막대한 재원 조달 방안의 부재, 급진적 개혁 추진으로 인한 통합 저해 위험, 사회적 갈등 관리를 위한 구체적 전략 미흡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핵심 과제로 꼽힌다. ‘국민통합’은 구호가 아닌 과정이다. 향후 정부는 재원 마련에 대한 솔직한 설명과 더불어 개혁 추진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경청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실천적 노력 없이는 야심 찬 국정과제가 오히려 사회 분열을 가속화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25.08.18 11:39:36
    What은 명확하나 How는 불분명한 국정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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