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기업들이 현금보유 규모를 크게 늘리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3일 23개 대기업의 연결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지난 6월 현재 상장사들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76조3,381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62조6,620억원)보다 21.8%(13조6,000억원) 늘어난 것이고 6개월 전인 지난해 말보다는 2조7,000억원 이상 많은 것이다.
최근 1년 동안 현금보유액을 늘린 기업이 전체의 70%인 17곳에 달했고 이 가운데 1조원 이상 늘린 기업도 5개나 됐다.
보유현금 증가는 국내 대표기업들에서 두드러졌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에는 19조700억원의 현금을 갖고 있었지만 올해는 23조8,000억원으로 1년 사이 4조원 가까이 늘었고 현대자동차도 3조원가량 증가한 18조5,430억원을 금고에 쌓아두고 있다.
문제는 이들 기업의 보유현금 증가가 실적호전에 따른 자금유입 때문이 아니라 투자축소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유럽 재정위기와 글로벌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투자를 통한 성장전략을 펴기보다 만약을 대비해 현금을 쌓아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이 밝힌 올 상반기 신규 시설투자 규모는 6조1,299억원으로 1년 전(20조7,897억원)보다 무려 70.5%나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유럽 재정위기가 현재진행형이고 이에 따라 국내외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현금 쌓아두기는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기업들의 보유현금 증가는 글로벌 불확실성이 증폭돼 앞으로 경영환경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라며 "현재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기업들의 현금선호 욕구가 계속되면서 투자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