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식시장에서 미국 기업의 시가총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9월 이후 20여 년 만에 최대 규모다.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자금 이동과 아마존·메타 등 빅테크 종목들의 급속한 성장세가 맞물리며 미국 주식으로의 집중이 심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금융 정보 업체 퀵팩트셋의 자료를 인용해 세계 상장사들의 시총(2일 기준)을 달러로 환산한 결과 미국 기업의 시총이 51조 달러(약 6경 8000조 원)로 2023년 말보다 1조 4000억 달러 증가했다고 6일 밝혔다. 세계 주식시장 시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8.1%로 2003년 9월 이후 2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홍콩을 포함한 중국은 연초부터 1조 7000억 달러의 시총이 증발했다. 중국 경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던 2015년 6월 20% 가까이 상승했던 중국 기업의 시총 비중은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닛케이는 미국과 중국의 시총 격차가 해당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1년 이후 가장 많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양국 증시 간 격차는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다. 중국은 경기 둔화 우려에 상하이종합지수와 홍콩H지수가 올해 들어서만 9% 빠졌다. 반면 미국은 주요 기업의 호실적과 연착륙 기대감이 높아지며 다우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모두 사상 최고를 경신하는 등 랠리가 펼쳐졌다. 중국 주식의 매력이 떨어지자 여기서 빼낸 돈을 미국 주식으로 옮기는 ‘자금 이동’까지 일어나고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올 1월 글로벌 펀드는 20억 달러 상당의 중국주를 매도해 6개월 연속 순매도를 기록했다.
미중 시총 격차의 확대를 주도한 결정적인 요인으로 양국 증시의 대장주인 빅테크 종목의 엇갈린 행보가 지목된다. 미국의 경우 최근 시장의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발표한 아마존과 메타 2개 사만으로 새해부터 시총이 5100억 달러나 불어났다. 이에 반해 중국의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같은 기간 310억 달러나 쪼그라들었다.
세계 시총 순위 명단을 보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상위 500개 상장사 중 미국 기업은 236개로 3년 전보다 15% 늘었지만 중국 기업은 80개사에서 35개사로 60%나 줄었다. 검색 대기업 바이두, 전자상거래 업체 JD닷컴, 중국 전기차 제조사 니오(NIO)는 아예 순위에서 사라졌다. 텐센트와 알리바바는 2020년 말 상위 10개사에 랭크돼 미국 빅테크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나 현재는 상위 30위권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텐센트(26위)뿐이다. 중국 정부가 민간기업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한 데다 미중 갈등에 따른 각종 규제로 첨단 정보기술(IT) 기업의 개발·생산에 차질이 빚어진 탓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글로벌 펀드에서 중국주 비중을 아예 없애는 사례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미국 자산운용사 배런캐피털은 지난해 10~12월 세계 성장주로 운용하는 주력 펀드에서 중국주 투자 비중을 제로(0)로 낮췄다. 2012년 펀드 운용 개시 이후 처음이다. 이전까지 중국주 비중은 30% 선을 유지했다. 운용 담당자인 앨릭스 우만스키는 “시진핑 체제에서의 규제나 지정학상의 문제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은 특히 중국의 예측 가능성 낮은 정책 운용을 주식가치 훼손의 최대 리스크로 지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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