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연옥에 갇히게 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창밖을 보니 불꽃과 뒤섞인 검은 눈송이 같은 잔해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절망의 비였습니다.”
홍콩의 32층 규모 아파트 단지 7개동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최소 128명이 사망하는 등 대규모 인명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생존자들이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29일(현지시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홍콩01 등에 따르면 사고 당시 최초로 불이 난 건물 2층에 거주하던 윌리엄 리(40)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 아내에게 전화를 받고 화재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대피를 시도했지만 현관문을 열었을 때 이미 복도는 짙은 연기에 뒤덮인 상태였고, 숨쉬기 어려워 다시 집 안으로 피신했다고 전했다.
리 씨는 아내에게 비상구 상황을 문의했지만 “로비가 불바다”라는 말을 듣고 대피로가 모두 차단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그는 젖은 수건으로 호흡을 보호하던 중, 복도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가 연기 속에서 이웃 주민이었던 부부 한 쌍을 구조했다.
그는 부부에게 물과 의복을 건네고 “진짜 비상 상황이 오면 창밖으로 뛰어내릴 수 있다”며 “우리는 2층에 있는 만큼 가능할 것”이라고 안내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기와 불길이 계속 번지자 그는 절망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창밖으로 불꽃과 검은 잔해가 떨어지는 모습은 절망의 비 같았다”며 “너무 잔혹해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이어 리 씨는 “짙은 연기보다 더 숨 막히게 한 것은 철저한 무력감이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에 앉아있는 것 뿐이었다”고도 했다.
아울러 그는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자녀의 장난감, 아내의 애장품을 챙길지 고민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리 씨는 창가에서 손전등을 흔들어 구조 신호를 보냈고, 화재 발생 약 1시간 후인 오후 4시쯤 소방대원이 그를 발견했다. 구조는 오후 6시 고가사다리를 이용해 이뤄졌다. 그는 함께 있던 부부에게 구조 순서를 양보했다.
리 씨는 “많은 이웃이 아직 실종 상태라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서 울었다”면서도 “힘든 시기이지만 우리의 정신은 더 강하다. 함께 치유하고 재건하자”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전날 오후 8시 15분 기준 이번 홍콩 아파트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소방관 1명을 포함해 128명, 부상자는 79명, 실종자는 약 200명으로 집계됐다. 수색이 진행되면서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홍콩 현지에서는 화재경보 작동 여부, 공사 과정 문제, 불길이 급속히 확산된 원인 등에 대한 규명 요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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