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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야단법석] 사람을 늘릴 것인가, 일을 줄일 것인가…사법개혁의 ‘본질’

대법관 정원 확대 법안, 정기국회 심사 본격화

“중요 사건 직접 심리 위해 증원 불가피” 주장

법원 “사건 구조 개편 없이 인력 확대만으론 한계”

재판소원 논의 겹치며 최고법원·헌재 역할 조정 쟁점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사법개혁안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대법관 정원을 현행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사법개혁안을 정기국회 내 처리하겠다고 밝히면서, 상고심 제도 전반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대법원의 심리 적체를 해소하고 실질 심리를 강화하겠다는 취지지만, 인력 확대만으로는 사법 신뢰가 오히려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법조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대법원의 기능과 상고심 구조, 헌법기관 간 권한 배분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18일 대법관 정원을 26명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했다. 이르면 다음 달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상고심 제도 개선 방향과 함께 병합 심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국정감사 과정에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각각 재판소원과 상고심 역할을 둘러싸고 상반된 입장을 드러낸 만큼, 향후 국회 논의도 속도와 범위를 둘러싼 조율이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대법원은 해마다 약 4만 건의 상고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사건 한 건에 투입할 수 있는 검토 시간이 10분 남짓이라는 지적은 오래 이어져왔다. 여당은 이런 상황에서 심리의 충실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과 정치적 사건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막기 위해 대법관 증원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법리적 쟁점이 크거나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에 대해 최고법원이 직접 기준을 제시하려면, 이를 담당할 인력이 충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반면 사법개혁의 핵심을 단순한 인력 확충이 아니라 사건이 대법원까지 도달하는 구조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하다. 모든 사건이 상고심으로 몰리는 현 체계에서, 인력만 늘릴 경우 부 단위가 세분화되고 전원합의체 운영은 오히려 형식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상고허가제 도입 여부, 사건 분류 기준 정립, 연구관과 보조 인력의 역할 조정, 전원합의체 심리 절차 개선 등 상고심 전반의 체계 재설계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직 부장판사는 “대법원이 어떤 사건을 직접 다뤄야 하는지 원칙을 정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증원은 방향 없는 확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확정 판결을 헌법소원 대상으로 포함하는 이른바 재판소원 논의까지 이어지면서 논쟁은 한층 복잡해졌다. 지난 17일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에서 손인혁 헌재 사무처장은 “재판소원은 법원의 판단을 다시 심사하는 절차가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 기본권 침해가 있었는지 여부를 심사하는 독립된 구제 절차”라고 설명하며, 이를 이른바 ‘4심제’로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헌재도 24일 언론 참고자료를 통해 재판소원을 4심제로 단순 표현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를 오해할 소지가 있어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재차 밝혔다. 재판소원이 확정판결의 결론을 다시 다투는 절차가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 기본권 침해가 있었는지를 별도로 심사하는 헌법적 구제 절차라는 점을 명확히한 것이다. 대법원이 법률 해석과 판례 형성에 관한 최종심이라면, 헌재는 그 과정에서 기본권 보장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통제하는 기관이라는 역할 구분을 강조한 셈이다. 이 때문에 심사 범위와 기준이 다른데도 재판소원을 곧장 4심제로 지칭할 경우 제도의 성격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입장해 자리하고 있다. 뉴스1


반면 법원 내부에서는 대법원 판결 이후의 심리 절차 단계가 사실상 늘어난다는 점을 두고 신중론이 이어지고 있다. 김대웅 서울고법 법원장은 국감에서 “권리구제 기간이 길어지고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했고, 수원고법 배준현 법원장은 “대법원과 헌재 간 권한 배분은 헌법 질서와 연동된 문제인 만큼 장기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법원 역시 재판소원 논의가 상고심 체계 전반을 다시 설계하는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증원 논의와 분리해 보기 어렵다는 인식이다.

결국 두 논쟁은 모두 상고심의 역할과 대법원·헌법재판소 간 최종 심사 권한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지라는 같은 문제로 수렴한다. 따라서 논쟁의 초점은 대법관 숫자 증원 여부가 아니라, 대법원이 앞으로 어떤 사건을 어떤 기준과 절차로 판단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이 국민에게 신뢰 가능한 형태로 작동하도록 제도를 어떻게 설계할지에 놓여 있다. 상고심의 실질 심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폭넓게 공유되지만, 인력 확대가 구조 개편보다 앞설 경우 사법부 독립성과 판결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된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정치권이 구조 개편 논의와 증원 문제를 병행할 의지가 있는지, 그리고 사법부 의견 수렴이 실질적으로 담보되는지에 있다. 심리 역량 강화와 독립성 보장, 국민 신뢰 회복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해법의 순서와 방식에 대한 견해차가 입법 과정의 주요 변수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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