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낫지, 백신 맞았다가 암 걸리면 어떡해. "
명절을 맞아 고향에 내려갔다가 친척 어르신께 코로나 백신 괴담(?)을 들었습니다. 올해 팔순을 맞은 큰아버지는 2년 전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셨는데 백신은 절대 안 맞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디선가 백신을 맞으면 이상한 성분이 몸에 남는다는 얘길 들으신 모양이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최근 국내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을 계기로 코로나19 백신과 암 발생 사이의 연관성을 두고 학계가 떠들썩합니다. 팬데믹 종식의 일등 공신으로 꼽히던 코로나 백신이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선 겁니다.
발단은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팀이 네이처의 자매지인 '바이오마커 리서치'에 발표한 논문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활용해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집중됐던 3년 동안(2021~2023년) 840만 명의 성인을 1년간 추적한 대규모 연구인데요.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접종자는 비접종자보다 전립선암과 폐암 위험이 각각 68%와 53%나 증가했고 갑상선암, 위암, 대장암, 유방암도 20~30%가량 발병 위험이 높았습니다. 백신 종류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였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등이 개발한 바이러스 벡터 기반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자는 갑상선암·위암·대장암·폐암·전립선암 위험이 증가했고 화이자, 모더나가 개발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은 갑상선암·대장암·폐암·유방암 발병 위험 증가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거든요. 성별로는 남성이 위암·폐암에, 여성은 갑상선암·대장암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령별 분석 결과 65세 미만에선 갑상선암·유방암이, 75세 이상에선 전립선암 위험이 더 높았죠. 물론 이번 연구만으로 백신이 암 발병의 원인이라고 단정짓긴 어렵습니다. 연구진도 "이번 결과는 백신 접종과 암 발생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일뿐,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라는 결론과 함께 "분자적 메커니즘 등을 밝히기 위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문제는 코로나19 재유행 우려가 여전한 상황에서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논문이 권위있는 저널에 실린 데다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Reddit) 등에 회자되면서 해외에선 백신 불신론자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해요. 다만 국내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 설계의 한계가 명확하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재훈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소셜미디어(SNS)에서 해당 논문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들을 나열하며 조목조목 비판했죠. 특히 접종군에선 백신 접종 1년 이내에 암 병력이 있는 이들을 제외한 반면, 비접종군에선 그런 언급이 없다는 걸 치명적 오류라고 지목했습니다. 암 진단을 받은 적 있는 사람들을 동등하게 배제하지 않았다면 두 집단을 공정하게 비교할 수 없다는 얘기죠. 추적기간이 1년 남짓에 불과한 것도 의료계의 거센 비판을 받는 요소입니다. 논문에 따르면 백신 접종 후 1개월 이내부터 암 발생률 격차가 두 배 가까이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거든요. 정 교수는 "암은 한 달 만에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며 "백신 접종으로 암 발생 위험이 증가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보단 백신 접종군이 여러 이유로 병원을 자주 찾으면서 암의 발견시점이 앞당겨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고 예방접종에 적극적인 사람들이 백신을 맞다보니 암을 조기에 발견할 확률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긴 합니다. 여기에 흡연, 음주, 체질량지수(BMI), 암 가족력 등 중요한 암 발병 인자가 분석에서 빠졌다는 이유로 학계의 쓴소리가 쏟아지고 있죠.
현재로선 백신 접종이 암 진단의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분위깁니다. 다만 코로나19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독려해야 하는 보건 당국으로선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질병관리청은 고령자와 생후 6개월 이상 면역저하자, 감염취약시설 입원·입소자 등 코로나19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오는 15일부터 25~26절기 예방접종을 실시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에 따라 LP.8.1 변이에 대응 가능한 코로나19 백신 530만 도즈를 확보했죠. 백신을 맞을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입니다. 다만 전문가들조차 첨예한 공방을 벌이는 사안인 만큼, 여러 정보를 종합적으로 따져보고 개인의 건강 상태에 맞는 결정을 내리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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