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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태양광 산업은 과잉 생산으로 인해 출혈 경쟁과 재고 부담을 겪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산업 쏠림과 디플레이션, 통상 마찰 등을 문제 삼으며 개입 의지를 밝혔다.
△'시진핑표' 산업의 과잉 생산은 정치적 부담으로 떠올랐으며, 민간 중심 산업 대응이 쉽지 않아 해결 여부는 불확실하다.
중국 정부가 심각한 과잉 생산 문제 해결에 나섰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과잉 생산을 해소해야 한다’는 공개 발언을 이어가며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데요. 시 주석까지 직접 나서는 이유로 과잉 생산이 특히 심각한 전기차, 태양광이 그가 집권 초부터 집중 육성한 산업이라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해 자신이 키운 산업이 위기에 빠진 셈이기 때문입니다.
‘시진핑표 주력 산업’ 전기차·태양광, 심각한 출혈 경쟁
먼저 전기차를 살펴 볼까요. 중국은 이제 전기차 산업의 대표 국가로 떠올랐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생산과 소비 모든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지난해 중국에서 생산된 전기차가 세계 최초로 1000만 대를 넘었고요, 새로 팔리는 자동차 2대 가운데 1대는 전기차일 정도로 보급량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죠.
그런데 이 같은 물량 공세는 과잉 생산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과잉 생산은 중국의 전기차 업계가 가격을 무리하게 낮춰서라도 ‘재고 떨이’에 나서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죠. 최대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는 22개 차종의 판매 가격을 최근 30% 이상 낮추는 ‘폭탄 세일’을 진행했고, 다른 전기차 회사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 인하에 나서는 출혈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럼에도 BYD가 재고를 소진하지 못해 중국 내 일부 공장의 야근을 줄이고, 30% 가량 감산에 나섰다는 로이터통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중소 제조 업체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한데요. 시장조사 업체 가스구에 따르면 중국 내 70여 개 자동차 제조사 가운데 85%의 공장 가동률이 손익 분기점에 해당하는 70%에 못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죠. 심지어 공장 가동률이 10%대에 불과한 곳도 있습니다. 사실상 재고만 팔기 급급하다는 의미입니다.
태양광 산업 역시 과잉 생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이 올해 5월 한 달 동안 추가 설치한 태양광 설비 용량은 93GW로, 1초에 태양광 패널을 100개 설치한 꼴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시장의 태양광 모듈 수요는 595GW인데, 중국의 모듈 생산능력은 1123GW로 거의 2배에 달합니다.
문제는 중국 태양광 업계에서 자발적인 감산에 나섰다는 점인데요. 규모가 큰 중국 7대 모듈 제조사마저 2017년 이후 지난해 처음 적자(총 270억 위안, 약 5조 1400억 원)를 기록할 정도로 수익성이 악화하자 ‘공멸만은 막아야 한다’며 생산량 조절에 나섰지만, 과잉 생산이 통제 불능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일” 잡아뗐지만… 결국 과잉 생산 해결 칼 빼
중국은 과잉 생산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에 나섰습니다. 시 주석 스스로도 과잉 생산을 해소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그는 이달 초 중앙재경위원회 회의에서 ‘네이쥐안(內卷, 출혈 경쟁)’ 현상을 언급했습니다. 최근 개최된 중앙도시공작회의에서도 시 주석은 “전국 모든 지방 정부가 (전기차 등) 신에너지 차, 컴퓨팅 파워 등 산업에만 매달리고 있다”며 특정 산업 쏠림 현상을 공개적으로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시 주석의 발언은) 자국 디플레이션을 악화시키고 외국과 통상 마찰을 불러오는 과잉생산을 문제 삼은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불과 1년여 전, 중국의 과잉 생산 물량이 밀어내기 수출로 이어지면서 글로벌 시장에 디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지적에 시 주석이 “(과잉 생산은) 존재하지 않는 문제”라며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잡아뗐던 것에서 입장이 정반대로 바뀐 것입니다.
과잉 생산 문제가 전기차와 태양광 산업에서 특히 심각하다는 점은 시 주석에게도 뼈아픈 대목입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 주석이 2012년 집권 이후부터 중국의 에너지 안보 확보를 위한 전동화(electro)에 주력해왔다고 분석했는데요. 중국의 태양광∙풍력 급증, 전기차 붐은 ‘시진핑표’ 정책의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 주석에 있어 과잉 생산 인정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중국 전기차의 최대 해외 시장으로 떠오른 유럽연합(EU)에서 계속 저가 덤핑을 문제 삼으며 통상 마찰이 벌어지고 있는 점도 시 주석으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미국과는 잠시 휴전 중이기는 하나 관세 전쟁을 벌여야 하기도 하고요.
얼어붙은 내수까지 첩첩산중… ‘권력 이상설' 도는 習 부담 커져
이 지점에서 최근 떠돌고 있는 시 주석의 실각설이 떠오르는데요. 물론 실각설의 실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가뜩이나 그의 철권통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황에서 과잉 생산이 최대 현안을 떠오른 것은 시 주석에게도 큰 정치적 부담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시 주석이 과잉 생산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시 주석은 집권 초기 철강과 석탄 업계에서 벌어졌던 과잉 생산 문제를 다뤄 성과를 거둔 이력이 있죠. 그러나 철강∙석탄 기업은 국영이 대부분입니다. 블룸버그는 “전기차, 태양광 등 산업은 민간이 주도하고 있다”며 “정부의 지도가 더욱 강력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과잉 생산이 단순히 생산 사이드만의 문제가 아닌 측면도 큽니다. 심각하게 얼어 붙은 중국의 내수 이야기인데요. 미국과의 관세 전쟁 속에 수출 물량이 앞당겨지면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월 시장 예상을 웃도는 5.3%를 기록했습니다만, 6월 소매 판매는 4.8% 증가에 그쳐 전월(6.4%)보다 낮았고 시장 전망치(5.4%)도 밑도는 등 내수 회복에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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